[위기의 지방정치] 3. 옥천의 새로운 실험
[위기의 지방정치] 3. 옥천의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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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0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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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은 ‘한국 풀뿌리 지방자치의 실험장’이란 별칭을 얻었다. 주민들이 지역언론을 중심으로 자치단체장과 의회, 일부 지역유지 위주의 전횡과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건전한 감시자로 나선 것이다. 지역 주민, 시민단체, 언론이 삼위일체가 돼 ‘지자체와 일부 인사들만의 지방자치’의 틀을 깨고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지방자치’를 정착시킨 셈이다.

이 덕분에 옥천군은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전국적인 싹쓸이 바람이 거센 가운데서도 절묘한 견제구도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열린우리당 소속 군수에, 군 의원은 한나라당 3명·열린우리당 2명·민주노동당 1명·무소속 1명이 선출된 것이다. 특히 공무원노조 옥천군 초대지부장 출신인 민주노동당 박한범 후보(45)는 옥천 가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당선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특정 정당의 이익보다는 견제와 균형 속에 지방자치 역량을 키우려는 옥천의 축적된 노력이 이런 선거 결과를 낳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역 언론이 지방자치 감시자=옥천이 이렇게 변모하기 전에는 ‘토호’ 몇명이 지역 여론을 쥐고 흔드는 여타 지자체와 다르지 않았다. 변변한 시민단체가 있어 군정과 의회를 감시할 처지도 못됐다. 하지만 1989년 옥천신문이 창간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군민들이 주주가 돼 창간된 옥천신문은 감시자의 역할을 넘어 ‘혁명’을 가져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바람을 일으켰다.

서민 일상 등 소소한 것까지 지면에 담아 주민 의식을 깨우치고 여론을 환기시켰다. 군정과 의정 감시에도 불을 켠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자연히 신문부수가 늘고 지역여론을 형성하는 매체로 급성장했다. 견제와 감시가 실체화되면서 단체장과 공무원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단체장의 업적보다는 주민 삶의 질과 관련된 정책개발과 사업에 행정력이 집중됐다. 중앙 정치권이나 정부에 쏠렸던 관심이 지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충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오한흥 대표(49·전 옥천신문 대표)는 “지방자치를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건강한 언론의 활용이 필요했다”며 “옥천신문은 이 지역의 풀뿌리 지방자치를 실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안티조선운동이 이 지역에서 벌어진 것도 이때부터다. 옥천신문은 조선일보의 친일전력과 반민족보도를 비판하며 안티조선 운동을 벌여 전국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2003년부터 매년 열리는 언론문화제는 ‘깨끗한 창, 건강한 언론’ 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풀뿌리 정당의 등장=이번 선거를 앞두고 옥천지역에는 순수 지역정치인 모임인 ‘풀뿌리옥천당’이 결성됐다. 지역에서 주권과 주체성을 확보하고 중앙정치와의 융합점을 찾아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하자는 게 목표다. 기존 정당, 중앙정치와 대치하며 싸우자는 게 아니라 구태 정치와 중앙정치의 예속을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이 지역 일부 젊은이들이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지자체의 도입 취지를 흐리고 있다고 보고 지난해 8월부터 주도한 이 운동은 결국 정당 결성으로 빛을 봤다.

지역현안을 주민들이 직접 생각하고 토론하는 담론(談論)문화도 도입됐다. ‘옥천을 말하다’란 제목의 주민간담회는 수시로 주민과 지역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장이다. 지금까지 ‘군서레미콘 공장설립 승인과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 ‘쓰레기 행정의 명암과 대안’ ‘민선군수 3기의 공과’ 등이 토론 주제로 올랐다. 풀뿌리옥천당은 지난 3월 전국의 8개 시민·정치단체와 함께 ‘풀뿌리, 초록정치네트워크 5·31 공동행동’의 발족도 주도했다. 풀뿌리옥천당은 군의원 선거에 1명의 후보를 냈지만 지방의회 진출에는 실패했다. 풀뿌리옥천당 서형석 대표(51)는 “우리는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조직과 돈을 쓰지 않고 원칙을 지킨 선거운동을 하며 주민에게 희망을 준 것은 큰 소득”이라고 자평했다. ‘자주 자존의 옥천건설’을 위한 실험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옥천군은=옥천읍과 8개면으로 구성돼 있다. 인구는 2만8백90가구에 5만5천6백10명, 재정규모는 1천5백억원이며 일반회계는 1천3백2억원, 특별회계 규모는 1백99억여원이다. 재정자립도는 15.7% 수준에 그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옥천의 실험은 사실 ‘옥천신문’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한흥 전 옥천신문 대표(충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대표)는 옥천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하며 군의회를 황금분할하게 된 데는 옥천신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컸다고 말한다.

오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옥천은 근래들어 정치 바람을 타지 않는다. 자민련과 한나라당 바람이 세게 불 때도 휩쓸리지 않고 그들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번 선거에서도 재선에 도전한 군의원 10명 중 2명만이 성공했다. 일을 못하면 뽑아주지 않는 옥천군민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성숙한 의식 뒤에는 작지만 흐름을 주도한 옥천신문이 있다는 것이 오대표의 주장이다.

오대표는 우리 스스로에게 익숙해져 있는 반(反)자치 문화를 스스로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군수가, ○○○ 국회의원이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게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즉 주민 자신이 놓은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진정 자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풀뿌리운동이 지역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한다. 중앙정치를 타파하려는 게 아니라 지방과 중앙의 상생을 위한 것이 바로 풀뿌리운동이라는 것이다.

오대표는 풀뿌리운동의 일환으로 ‘의정감시단’을 운영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시민운동이 비대화되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접었다고 한다.

그는 “옥천이 시도하는 풀뿌리운동은 시작은 했지만 끝은 없다”면서 “결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향은 옥천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향신문:2006년 06월 04일〈옥천/김영이기자 ky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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