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밥 먹고 다니던 새재 오솔길 아련…"
"새벽 밥 먹고 다니던 새재 오솔길 아련…"
[내고향 옥천] 동이면 조령리 출신 대전 은하조명 대표 이남수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6.05.11 14:37
  • 호수 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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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은하조명 대표 이남수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면 밖엔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호롱불을 켜놓고 상에 빙 둘러앉아 이른 아침 식사를 했다. 든든하게 밥을 먹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

 밥을 먹고 나면 검정 책보에 책 몇 권과 사각 도시락을 잘 챙겨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곤 여기저기 꿰맨 검정 고무신을 챙겨 신고는 산 밑으로 난 길을 따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동네 형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풀섶에 붙어 있는 이슬방울들이 바지 아랫단을 모두 적시고 고무신으로 흘러들어가 미끈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도 학교에 도착하면 지각하기 일쑤였다. 학교까지 거리는 근 20리로 8km에 달했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걷고 달리기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하굣길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늘 어두운 밤이었다. 아버지가 초롱불에 불을 밝히고 산 밑까지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 손에 달린 초롱불빛을 따라 굽이굽이 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냥 마셔도 됐던 금강
대전에서 은하조명을 운영하고 있는 이남수(49)씨의 고향은 동이면 조령리 ‘새재’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멀었던 등하굣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덕분에 운동회가 열리면 달리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기초산악훈련을 한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우산초등학교는 행정구역상 이원면이었다. 그래서 동이초등학교에 입학했다. 2학년이 되던 해 다행히 학교를 옮길 수 있었다. 행정구역 개편과 학생 수 재조정 등이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이초등학교에 함께 다닌 친구들은 30회 졸업생들이고 우산초등학교 친구들은 5회 졸업생들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놀던 금강은 지금의 금강과 많이 달랐다. 마을에서 식수로 사용해도 될 만큼 깨끗했고 모래사장도 훌륭한 놀이터였다. 깨끗한 금강에서 잡아 올리는 물고기는 그냥 날것으로 먹어도 아무런 해가 없을 정도였다. 해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그곳은 이미 많이 변했다. 강에는 어렸을 적엔 보지 못했던 뻘이 쌓이기 시작했다.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래도 마음이 좋지 않죠.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훼손이 많이 되어서 착잡해요.”

◆군 제대하며 조명업과 인연
군에 입대할 때까지 고향에 살았던 이남수씨는 제대를 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농토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당시 조령리 논 한 마지기 팔면 다른 동네 가서 두 마지기를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모내기나 추수철이면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일하고 새참을 나누어먹던 모습도 행복한 기억으로 이남수씨의 머릿속에 담겨 있다.

그래도 어른이 되어 결혼생활을 꾸려가기에 녹록치는 않았다. 서울에서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구에서 조명사업을 하던 형에게로 갔다. 대구에서 일을 배우며 형인 이영수씨 곁에서 살다가 95년에 대전에 은하조명을 차렸다. 형님 가게 이름을 그대로 따랐다. 독립을 고민하면서 대전이 고향 근처라는 사실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과 대구에 살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무척 애틋했다.

“고향에서 멀리 살면 살수록 향수가 더한가 봐요. 대전에 오면서부터는 고향에도 자주 가게 되고 고향사람들도 많이 만나니까 훨씬 덜한 것 같아요.”

◆옥천 사람들 모두 맘 좋아
이남수씨의 사업체는 동구 인동 장로교회 맞은편에 있다. 그곳에 앉아 창밖을 가리키는 이남수씨의 손끝을 따라가니 ‘옥천타일’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저 분도 옥각리 분이에요. 가까운 곳에 함께 있으니 든든하죠.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와주고요. 옥천 사람들이 유난히 잘 뭉쳐요. 다른 지역에서 시샘할 정도로요.”

이남수씨는 현재 향우회 모임인 옥인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고향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어릴 적 고향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물론 은하조명을 찾는 고향사람에 대한 우대정책도 변함없다. 일반 판매가격에서 10% 이상 할인은 기본이다.지난해에는 고향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대학생을 위해 매달 장학금을 개인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옥천 사람들은 정말 악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냄새 가득한 고향 희망
95년 대전에서 독립한 이남수씨는 건설경기가 어려워 영향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탄탄하게 사업체를 꾸려가고 있었다. (사)한국조명유통협회 대전광역시지부 회장도 맡아 했고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못 다한 공부도 마저 하고 있다. 봉사단체 회원으로도 열심히 살아간다. 일 년에 신정과 구정, 추석을 빼고는 가게 문을 닫는 일이 없다는 그의 말에서 얼마나 억척같이 열심히 살아왔는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더 자주 찾아가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더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과 사람냄새 짙은 고향이 그 모습 변하지 않길 기원한다는 바람을 이남수씨는함께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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