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못할 꿈과 마음 나누기에 관한 이야기
포기 못할 꿈과 마음 나누기에 관한 이야기
함께사는 세상 [143] 음악을 사랑하는 정진시·정하목 부자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6.05.05 00:00
  • 호수 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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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아들 정하목, 어머니 이영숙, 손자 재욱, 아버지 정진시, 손자 순호, 며느리 김미화씨.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고 아들은 색소폰을 연주한다. 어릴 적 가수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교감으로 퇴직하고 실버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학창시절 잠깐 악기를 연주했던 아들은 서른을 넘긴 나이에 다시 악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지금 둘은 종종 한 무대에 선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더욱 풍요롭다.

◆아버지 이야기
옥천읍 수북리가 고향인 아버지 정진시(69)씨는 어려서부터 꿈이 가수였다. 조그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를 들으며 꿈을 키웠다. 유난히 목청이 좋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음성을 물려받았다.

소풍을 가면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름대로 소질을 검증도 받은 터였다. 부모님에게 용기를 갖고 뜻을 밝혀보았지만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꿈이었다.

국민영화가 되어버린 왕의 남자로 ‘광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역시 당시 가수는 광대와 동일시되며 신분의 끝없는 추락처럼 여겨졌다. 정진시씨가 그 때 즐겨 부르던 노래는 남인수씨의 ‘무너진 사랑탑’이었다. 직업으로 가수를 포기해야 했지만 노래 부르는 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나 아니면 금강 옆에 가서 부르곤 했어요. 즐거운 일이었죠.”

유유히 흐르는 금강은 훌륭한 관객이 되어 주었다.

◆아들 이야기
정진시씨의 장남인 정하목(37)씨는 고등학교때 처음 악기를 접했다. 옥천고등학교 밴드부에 입단을 하면서다. 공교롭게도 당시 아버지 정진시씨가 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함께 생활을 했다.

잠깐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밴드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의 말 못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밴드부를 담당했던 교사가 따로 있었는데 같은 교사 입장에서 얘기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하목씨는 2학년 2학기에 접어들 때까지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서너 번 정도 그만둘 것을 은근히 권유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2학기 때 스스로 밴드부에서 탈퇴를 했다.

“아버지의 뜻도 알고 있었지만 그게 그만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고요. 공부도 해야 할 것 같고 조금 지겨워지기도 하는 시점이었어요.”

그렇게 얘기는 하지만 만일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면 계속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얘기를 하면서도 정하목씨는 지금 모교에 밴드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무척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가수의 꿈을 포기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지원해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정진시씨는 그냥 웃음 끝에 “아들이 힘들지 않은 삶을 살기 원했다”는 말로 이유를 설명한다.

◆아버지 이야기
꿈을 포기했던 정진시씨는 충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교사의 진로를 선택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식적인 가수데뷔는 아니지만 다양한 무대(?)에서 끼를 발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는 무려 다섯 번이나 앵콜을 받으며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다. 군에서도 크고 작은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이고 군가교육을 시키는 일까지도 맡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얘기가 무르익자 기억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비밀 하나도 꺼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전 중도극장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렸거든요. 그 때 신청해서 출전했어요. 갔더니 관계자가 ‘너무 어려서 공식적인 참가는 불가능하고 여기까지 힘들게 왔으니 무대에서 노래나 한곡 하고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노래만 부르고 왔죠. 많은 관객들 앞에서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아들 정하목씨가 깜짝 놀란다.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탈퇴를 종용하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할 것이다.

◆아들 이야기
밴드부를 탈퇴하면서 놓았던 악기에 대한 유혹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았다. 99년도에 다시 소프라노 색소폰을 손에 잡았다. 이미 오래전 일이어서 옛 감각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포기를 했다가 다시 시작한 것이 2002년이다.

독학으로 처음부터 다시 감을 살려 나갔다. 다행인 것은 온라인 문화가 활성화 되면서 대전에서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호회 고수 회원들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전업이 아닌 취미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았지만 말이다.

“공원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하는데요.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많이 했어요. 아이들 시험공부해야 하는데 방해된다고요.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죠 뭐. 듣기 좋으면 그렇게 박대당하지는 않을 텐데. 더 열심히 해야죠.”

옥천에 살고 있는 정하목씨는 고향에서 소모임이 만들어져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도 세대를 뛰어넘어 음악으로 만나는 몇몇이 있긴 하지만 체계를 갖춘 동호회 활동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가족 이야기
그리고 그 둘은 지금 한 무대에 서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지난해 실버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은 정진시씨는 99년 퇴직을 한 뒤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에 흔한 표현이어도 어쩔 수 없다. 충북실버예술단원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병원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들도 찾는다. 크고 작은 문화행사에도 주요 섭외 대상이다. 전국을 상대로 움직인다. 공연횟수만 작년에 20회, 올들어 8회다.

그 중 우리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부자가 동시에 무대에 서기도 한다. 이들이 무대에 서는 날은 가족 전체가 움직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때로는 로드매니저도 되고 때로는 스케줄 매니저도 되어준다. 무대에 서는 둘에게는 가족이 든든한 힘이다.

“아직 아버지 노래에 제가 반주를 한 적은 없는데요. 앞으로는 곡 연습을 해서 그것도 해봐야죠. 전 아직 무대에 서면 떨려요. 한 100번 정도는 더 서야 안 떨릴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
정진시씨는 사람들을 많이 울린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대에 서면 더욱 그렇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었다는 증거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관객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과 보람이 있을까?

“노래를 할 때 그냥 기교로 하지는 않아요. 때로는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처럼, 때로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하죠. 가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저의 철학과 감정을 최대한 담아서 노래해요.”

정진시씨에게 더 이상 아마추어 향토가수라는 칭호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하긴 주변에서 “음반을 내라”는 권유는 이미 지칠 정도로 받은 터이고 조만간 그의 이름이 선명한 음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인생을 펼치고 있는 아버지가 정하목씨는 자랑스럽다. 간혹 무리하는 것같아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그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다시 짬을 내 색소폰을 연주하는 아들이 그래서 기특하다.

“점점 삶이 각박해지잖아요. 음악을 통해 제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무대가 주어지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활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맞벌이 하느라 힘든 아내의 일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좀 미안하지만요.”

남자 셋의 ‘포기할 수 없는 꿈’과 ‘마음 공유하기’에 관한 수다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주방에서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가야 할 것 같다. 행복이 가득 담긴 저녁밥상에 함께 앉고 싶은 욕망을 누르기가 쉽지 않다.

객원기자/이용원 yolee@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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