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감성 키워 준 고향 장고개"
"따뜻한 감성 키워 준 고향 장고개"
[내고향 옥천] 군북면 막지리 출신 대전시청 공보관실 근무 손봉철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6.05.05 00:00
  • 호수 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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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오후 햇살을 맞으며 찾아간 손봉철(39)씨와의 대화는 하루를 유쾌하게 했다. 차분차분 옛 고향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는 모습이 듣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향에 대한 감성은 쉽게 전염되는데 손씨의 목소리 속에서 몇 배는 더 강해져 아련한 추억 속으로의 여행에 동행해 줄 것을 강요했다.

   
▲ 대전시청 공보관실 손봉철씨

대전시 공보관실에서 일하고 있는 손씨의 고향은 군북면 막지리다. 손씨가 살았던 곳은 그중 장고개다. 그러나 고향에서 살 수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대청댐에 고향의 대부분이 수몰되면서 쫓기듯 대전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졸업장은 천동초등학교에서 받았다.

결국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은 대전에서 보낸 세월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속에 자국을 남겨 놓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추억은 모두 장고개가 주었다.

“대전에서 학교를 오래 다니기는 했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어요. 아무래도 도시니까요. 도시에서 추억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잖아요. 계절의 변화나 맑고 순수한 것에 대해 감동할 수 있는 감성도 모두 고향에서 받은 선물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도 채 다 다니지 못하고 떠난 고향이지만 지금의 손봉철씨 마음을 키운 것은 분명 그곳이다.

◆지금도 봄나물 뜯으러…
지금은 아주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지만 비교적 자주 찾는 편이다. 조상들의 묘가 있어 명절 때는 빼놓지 않고 간다. 덤으로 요즘 같은 봄이면 고향마을을 찾아가 봄나물을 뜯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손씨가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며 혼자 형제들을 키워낸 기둥 같은 어머니와 함께 간다. 떠나 온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손씨 자신보다 오히려 어머니가 더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댐으로 수몰된 경계쯤 어딘가에 있었던 손씨의 집은 헐리고 없지만 강과 주위의 산이 어우러진 풍광은 삭막한 도시의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그처럼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라는 게 손씨에겐 큰 행복이다.

꼭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곳이다. 물론 그 감성 역시 장고개가 키운 것일 게다. 고향회귀본능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향이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본능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강하게 표출되는 특징이 있다.

“지금 고향에 친구들은 없어요. 어릴 적 한동네에 손소연, 손동주라는 친구가 살았고 여자 친구들도 두어 명 있었는데 이름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누가 얘기해 주면 금방 떠오를 것 같은데.”

친구들을 떠올리는 손씨의 표정은 가물가물해진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군북초등학교에 다니다 고향이 물에 잠기면서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더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고향에 향우회가 있어 서로의 애경사가 있으면 힘을 보태고 있다. 그 자리엔 손씨의 형이 참석한다.

◆마을 산과 강은 맘 편한 놀이터
손씨의 머릿속엔 고향에 대한 애틋함에 비례해 어릴 적 추억들이 무척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강가 초가집에서 살 때 토끼풀을 뜯으러 갔다가 다친 손을 아버지가 칡넝쿨로 묶어 주었던 기억부터 가물어 강물이 마르면 얕은 곳을 따라 가방을 높이 들고 걸어 건너던 기억도 선명하다.

“가물 때를 제외하곤 거의 배를 타고 다녔어요. 진걸까지 가서 거기서 걸어서 학교까지 갔죠. 돌아올 때 가산 돌 공장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만나면 집까지 그 트럭을 타고 갔던 기억도 나네요. 지금은 학교도 이전하고 그나마 폐교가 되었지만요.”

손씨의 어릴 적 놀이터는 마을을 감싸고 있던 산과 마을 앞을 흐르던 강이었다. 아름다운 그곳엔 외지인들이 천렵도 많이 왔다. 강에서 놀던 기억이 그리도 많은데 정작 본인은 수영을 못한다고 털어놓는다.

언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손으로 젓는 배를 타고 학교에 가던 학생들이 배가 뒤집히면서 죽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으로 동네 꼬마들이 강에서 수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강에서 다슬기나 게를 잡고, 작살을 만들어 고기를 잡는 형들 곁에서 뛰어놀기는 했다. 겨울이면 산에 올무를 놓아 산토끼를 잡았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줄곧 미소를 지으며 차분차분 이야기를 풀어가던 손씨도 어릴 적 추억을 본격적으로 끄집어내면서는 환한 웃음을 머금는다.

◆소박하고 인간미 넘쳤던 곳
지금 찾아가는 고향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공간 대부분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부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다.

“물에 잠기기 전에는 한 20가구 정도 모여 살았던 것 같아요. 주민들이 소박하고 인간미가 넘쳤죠. 도시의 생활과는 분명 달랐어요.”

13년, 단순히 숫자로는 인생에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손씨에게 군북면 막지리 장고개 마을은 따뜻한 마음을 키워준 소중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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