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지겟꾼에서 평택시의원까지
옥녀봉 지겟꾼에서 평택시의원까지
[내고향 옥천] 군서면 하동리 옥녀봉 출신 경기도 평택시 시의원 김성환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06.04.21 00:00
  • 호수 8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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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김성환(53·경기도 평택시 평택동, 군서면 하동리 옥녀봉 출신) 평택시의원은 14일 평택시민신문 이전개소식에서 여러 사람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자신을 확인시키기에 바빴다.

4년간의 시의원 활동을 통해 그는 ‘탱크’같은 저돌성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 시민들과 약속한 일 등은 당차게 밀어붙였다.

   
▲ 경기도 평택시 시의원 김성환
구제역이 한창일 때, 구제역이 발생한 마을의 주민들은 먹는 물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이때 초선 의원인 그는 주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수돗물을 공급하겠노라고 약속해버렸다. 그리고 방법을 찾았다.

마을에 지하수 대형관정 뚫는 예산과 돼지를 처리한 곳의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시설하는 예산 등을 합해 각 가정에 수도관을 연결시켰다.

주민들은 각자 설치하는 계량기 값을 제외하고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숙원이었던 수돗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 평택 시내에 노인들이 쉴 수 있는 경로당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당장 경로당을 만들 땅도 없었고, 예산도 없었다. 원래 땅을 마련해야 예산이 지원된단다. 그런데 누구에겐가 힌트를 얻었다.

“시내에는 경로당을 할 만한 땅을 구할 수가 없으니 전세로 방을 얻어 경로당을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전세금을 시가 지원한 전세 경로당이 평택에 탄생했다. 초선 김성환 의원의 작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은 김성환씨를 가리켜 ‘저 사람은 안 되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초선답지 않게 많은 조례를 발의했다. 그가 대표발의한 조례만 해도 △영세민 수도요금 감면조례 △주차장조례 △쓰레기봉투, 정화조 안내문, 공영버스 상업광고, 쓰레기차 공익광고 및 상업광고 조례 등이 있고, △평택시 구도심권 활성화 추진위원회 조례 △지역아동센터지원조례 △주민참여지원조례 △주택 및 연립주택 주차장 설치지원조례 등은 의원발의로 준비 중이다.

그가 평택에 자리를 잡은 것은 고향을 떠나 서울 등지에서 생활한 지 20년이 된 86년이었다. 음성이 고향인 아버지는 서울을 거쳐 시흥에 살 때 한국전쟁을 만났고, 군서로 피난을 왔다.

피난지 군서에서 아들을 낳으니 그이가 바로 김성환씨다. 군서초등학교 44회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66년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서울로 빵 기술을 배우러 고향을 떠났다. 너무도 일찍 고향을 떠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일.

새벽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졸아가며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서러움도 많이 당했다. 소변을 보다가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어려움을 이기고 그는 일어섰으나 서울에서 83년 첫 실패를 맛보았다.

평택에 온 후 그는 현재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빵집인 ‘케잌타운' 가게 건물 앞을 매일같이 쓸고 닦았다. 자신이 세들어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5년 계획을 세워 ‘저 건물은 내 거야!’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그 뜻은 이루어졌다.

그는 혼자 살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빵집을 운영하고 있기에 그날 그날 남은 빵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시설에 정기적으로 기탁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는 곳인 평택 땅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봉사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 ‘케잌타운'도 알려졌다.

또 하나 뜬 것이 있다. IMF사태로 인해 다들 어려웠을 때 그는 ‘만득이핫도그’를 만들어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말만 잘하면 하나 더 주겠다고 해서 손님을 끌어 모았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러 왔다. 한때 유행했던 ‘만득이핫도그’는 김성환씨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지난 2002년 우연치 않게 정치에 입문하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평택 토박이도 아닌 사람이 각종 텃세와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시의원에 당당히 당선된 것도 어려울수록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그의 매력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재선 시의원에 도전하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었다. 하동리 옥녀봉에는 그의 형님인 김청홍(65)씨가 살고 있다. 군서초 44회 동창생인 곽인상 군서농협 조합장을 비롯, 오동리의 전우찬씨 등 많은 동창생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하루에 하늘을 몇 번씩 보십니까? 옥녀봉에서 나무지게 지고 배고프게 살던 제가 시의원까지 하며 이 정도 살게 된 것이 행복하고 고마운 거지요.”

그가 걸어온 빵 인생 40년, 시의원 4년이 시민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품질이 저하되면 부자지간에도 거래가 끊어진다’는 케잌타운 철학을 철저히 지켜왔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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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수 2006-04-20 20:45:40
전 개인적으로 세교동 살고있고 사장님에 대해선 그 밑에서 일하던 문과 쌍용자동차시절 고향갈때마다 같이가곤 했죠.사장님의 인생을 접하고나니 진정 이시대의 영웅이라고 생각됩니다.아뭏튼 이번 도전에도 성공하시고 다음번엔 옥천을 위해서 레미콘으로 신음하고잇는 군서를 위해서 고향도전이라든 고향을 위해서 꼭 봉사좀 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