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향기, 대전에서 품어내고 있죠”
“고향의 향기, 대전에서 품어내고 있죠”
[내고향 옥천] 동이면 우산 2리 출신 박병용, 대전 동구 신흥동 [옥천꽃집] 대표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6.03.31 00:00
  • 호수 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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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우산2리 출신 박병용씨

놀이기구가 없어도, 컴퓨터가 없어도, TV가 없어도, 게임기가 없어도 그 때는 행복했었다.  마을과 학교와 휘돌아 도는 강과 울창한 숲 등 천혜의 자연 환경이 바로 우리의 놀이터였다. 자동차가 드물었던 시절, 온 종일 걸어 다녀도 맑은 공기 때문인지 피곤한 줄을 몰랐다.

산딸기와 오디를 따 먹으며 즐겁게 산책을 했고, 물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다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학교 바로 뒤에는 모래로 그득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산중턱에서는 두꺼운 새끼줄로 그네를 만들어 하늘을 나를 듯이 그네를 탔다.

5월 단오가 되어 그네를 뛰면 온 천지가 내 세상 같았다. 단오 행사가 끝나면 그네를 타던 새끼줄은 고기잡이 어망이 됐다. 새끼줄로 포위를 해서 물고기를 끌어 모으면 하루 매운탕 거리는 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동이면 우산2리 출향인 박병용(50·대전 신흥동)씨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이상향이 그려졌다.

박씨가 그린 것은 단지 상상이 아니라 그 옛날 몸으로 체득했던 소중한 기억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우산초등학교 5회 졸업생, 대전 신흥동 7통 통장, 옥천꽃집 대표 등 그의 이력을 꿰는 작업을 가만히 시작했다.

“당시 제가 어릴 적에는 우산리는 이원면에 속해 있었지요.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당시 같은 이원면에 있는 지탄초에서 운동회를 했었는데, 우산초등학교 학생들 전부가 산을 넘어 한참을 넘어 갔었죠. 아무튼 그 때는 참 놀게 많았어요.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추억은 방울방울,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우산리 추억은 아름다워
“제가 달리기를 참 잘 했드랬어요. 아마 중고등학교에 꾸준히 진학했다면 마라톤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초등학교 시절에도 달리기만 하면 줄곧 1등을 도맡아 해서 선생님들이 아이스크림을 사주곤 했거든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고등학교 진학을 못해 우산초는 박병용씨의 유일한 모교가 됐다. 71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집안 농사에 뛰어들었다. 돈을 벌어오겠다고 사촌 형과 같이 부산으로 가보기도 했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85년, 22살 되던 해까지 계속 집안 농사를 지었어요. 정확히 85년 3월17일 지금의 아내를 만나 대전 신흥동에서 신방을 차렸죠. 택시기사도 해보다가 86년 은행동 충청꽃도매시장내 대전꽃도매상가 기사로 직장을 잡았어요. 그 때가 꽃과의 인연의 시작이었죠.”

당시 박씨는 꽃을 배달하는 운전기사였다. 하지만, 그는 운전만 하지 않고 어깨너머로 주인의 꽃 포장 솜씨나 꽃 관리 등을 배웠다. 그리고 92년 1월4일 자기만의 꽃집을 가진 것이다. 이름도 고향을 못 잊어 ‘옥천 꽃집’이라 했다.  “14년째 한 셈인가요? 고향을 그리면서 꽃을 판지도 벌써 그렇게 되네요.”

출향인 모임 적극 구성해
그는 신흥동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마을 주민에게 신뢰를 얻어 신흥동 7통 통장이란 직함을 얻었다.  신흥동 7통에 속한 가구수만 해도 200가구가 족히 된다 하니 그의 고향 우산2리의 몇 배이다.

“마을주민들도 제 고향사람처럼 소중히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제 고향 옥천도 빛이 나는 게 아니겠어요?” 는 또, 신흥동 옥천 향우회인 ‘옥향회’(회장 이은태)의 총무를 맡으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대전 동구 인동이 주축이 되어 모임 옥천출신 동구인들의 모임인 옥인회(회장 이유한)도 가입되어 있고, 얼마 전까지 우산초 5회 동창회(회장 김용기)의 총무를 맡기도 했다.

“솔직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도 엄연히 고향이 아닌 타지인 걸요. 같이 모여 고향 이야기만 해도 즐거워요. 옥향회는 15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옥인회는 37명 정도가 되지요. 우산초 5회 동창회는 17명 정도가 동네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모인답니다.”

그는 넉넉한 웃음을 지면서 고향사람을 애써 반기면서도 ‘특별히 성공하지도 않은 제가 뭐 취재거리가 되냐?’며 여러번 반문을 했다.  “그냥 보통 사람 사는 모습 그대로인데..오히려 고향에 누가 될까봐 걱정되네요” 물음에 이렇게 말을 맺었다.  “고향 사랑하는 마음이야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성공의 유무를 벗어나서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는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 그러면요. 다른 건 모르지만, 저는 제 고향에서 죽고 싶을 만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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