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장학금 전달하는 고향 사람”
“16년째 장학금 전달하는 고향 사람”
[내고향 옥천] 청산면 인정리 출신 청주시 문화유산해설사 이상성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6.02.24 00:00
  • 호수 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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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성씨

소년은 손끝이 갈라지고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일을 했다. 천성이 부지런한 아버지가 잠깐 딴전 피는 것 조차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려고 고개를 쳐들었을 때도, 오줌이 마려워 오줌을 누려고 할 때에도 일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운다고 핀잔을 듣곤 했다. 

참 가난했다. 초등학교 시절, 크레용을 살 돈이 없어 연필로만 그림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연필로 그린 그림은 교실 뒤편에 전시되지 않았다. 소년이 그린 그림은 색이 바랜 흑백사진 마냥 어딘가 묻혀 있을 뿐이었다.

한 번은 친구 크레용을 빌려 천연색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었다.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은 드디어 교실 뒤편 게시판에 전시되었다. 그 때의 기분이란? 환희와 슬픔이 교차됐다. 

가난으로 인한 설움과 나도 해냈다는 어떤 성취감이 잠시 동안 그를 둘러쌌다.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그것만이 가난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모교 근무 8년 `생생' 
청산초(35회)와 청산중(6회)을 졸업한 소년은 13명이 시험을 보러 간 청주사범학교 시험에서 당당히 혼자 합격을 했다.  청산면 인정리 구치(국화동)에서 태어난 소년 이상성(71·청주)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되는 찰나였다. 그리고 그는 교사가 되었다.

죽향초를 초임지로, 고향인 청산의 예곡초와 모교인 청산초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하고, 청주로 갔다.  청주 한벌초, 교동초, 음성 소이초, 제천 신풍초 교감, 영동 장학사, 괴산 칠성초 교감, 영동 화곡초 교장, 영동 교육청 학무과장, 부용초 교장을 거쳐 1998년 청주 봉명초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고향인 옥천과 청산을 지나 온 궤적은 청주, 음성, 제천, 괴산, 영동으로 내달렸지만, 그에게 다시 고향에서 근무할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1961년부터 68년까지 모교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가장 새롭단다.

“그때 근무할 당시 학교 교가가 없어서 제가 직접 작사를 했죠. ‘칠보단장 이름난 도덕봉 밑열’로 시작되는 교가를 바로 제가 만든 거예요. 그 교가를 맨 처음 문교부에 제출했을 때 다시 작성하라는 공문이 왔었죠. 청산의 칠보단장을 제대로 이해 못해서 그런 거예요. 다시 재차 설명을 한 후에 허가가 났었죠. 구치에 있는 충혼탑의 글귀도 제가 썼고, 이번 100주년 기념식의 기념탑 뒤의 글귀도 제가 썼죠. 그러고 보니 고향과 모교에 아직 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네요.”

정운 장학회...모교에 16년째 장학금 
그는 지난 17일 청산초 91회 졸업식에 참석했다. 아니 매년 후배들이자 제자들인 청산초 학생들의 졸업식에 장학금을 전달하러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92년부터 16년째 그는 청산초를 졸업하는 6명의 후배를 선정해 3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고 그에게 물었다.

“크레용이었어요. 어릴 때 그 기억이 얼마나 오랫동안 잔상이 되어 남았던지, 적어도 후배들에게는 크레용 살돈 조금이라도 지원해 주자는 의미였죠. 뭐 대수롭지 않은 건데...”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정우씨와 어머니 여운심씨의 3남2녀 중 장남, 그는 가난했지만, 지금의 그가 있도록 키워준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장학회 이름도 부모님의 가운데 글자 이름을 따서 ‘정운장학회’이다.

고향을 사랑하는 모범 가족
이상성씨 형제들은 해마다 8월14일이면 고향으로 회귀한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정해진 그들만의 약속이다. 이것은 지난번 이상성씨의 동생 이상귀(대전보건대 학장)씨를 인터뷰했을 때 확인한 바 있었다. 이름하여 ‘정운수련회’이다.

아들, 손자, 며느리 등 57명이 매년 그 날이 되면 모교인 청산초에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이상성씨 형제들의 고향사랑은 이미 정평이 나 얼마 전 TV에 소개된 적도 있단다. 

“내 고향 잊지 못해요. 한다리 근처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갔고, 가을 수확철에는 완전히 황금들판이었어요. 청산은 옥천의 곡창이었어요. 그래서 내 손주 손녀들에게도 이 자랑스런 고향 청산을 알리고 싶어 매년 수련회를 여는 거예요”

그는 현재 퇴임 후, 청주시 문화유산해설사로 7년 남짓 활동을 하고 있다.  상당산성, 백제유물전시관, 충열사, 고인쇄 박물관 등을 방문할 때 유심히 살펴보면 설명하는 그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또 36년 동안 충북 글짓기 지도회에서 후학양성에도 힘썼던 그는 교장으로 퇴임할 때 1천만원을 장학금으로 쾌척하기도 했다.  소년은 어느덧 고희를 넘겨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졸업식장에 후배들과 같이 선 그는 아직도 어릴 적 동심이 남아있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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