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람이라면 모두 믿음이 가요”
“고향 사람이라면 모두 믿음이 가요”
[내고향 옥천] 동이면 금암리 출신 재안양옥천향우회장 이기정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06.02.17 00:00
  • 호수 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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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안양옥천향우회장 이기정씨

 ‘고향’이란 말이 주는 마음의 평안을 느껴본 사람은 모두가 안다. 어머니 품속 같은 아늑함과 편안함이 있고, 언제든 달려가도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고향이란 말은 사람들에게 이미 편안한 곳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고향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없는 사람들까지 고향은 무조건 포근한 곳으로 인식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객지생활 하면서 원래 그렇잖아요. 옥천은 고사하고 충청북도, 아니 충청도를 말하는 ‘충’ 자만 들어도 무조건 반가웠어요. 어쨌든 한 번 더 보게 되고 어디서 왔느냐고 꼭 묻기도 하고요.”

재안양옥천군향우회(이하 안양향우회) 이기정(57·경기도 안양시 호계동·경인베니프 대표) 회장이 그런 사람이다.

그가 없었어도 누군가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향우회를 일구었겠지만 안양향우회가 꾸려질 때까지 그는 중심에 섰다. 그가 안양에 정착한 때는 87년. 서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던 그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2의 출발을 기약했던 곳이 안양이었기 때문이다.

햇수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다. 안양시 호계동에서 계모임 형식으로 김문식씨와 신철홍씨 등 아는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향우회를 시작했다. 그런 모임을 지속해 오던 중 다른 사람들까지 확대해서 만남을 갖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안양향우회를 결성하게 된 계기를 맞는다.

“처음 시작할 때 군하고 옥천신문사에 연락을 했어요. 플래카드 10개를 붙이고 홍보를 했지요. 회장을 누구를 모셔야 할까 고민했고, 향우회를 잘 화합시키고, 이끌어갈 분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활발하게 하신 김춘수 회장님을 모셨죠.”

그가 하는 말은 곧 안양향우회의 역사가 된다. 그가 맡은 직책만 해도 총무, 사무국장에다, 부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12월 회장을 맡게 되었다. 친목계 시절부터 회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향우회에 쏟아 부은 시간이 자그만치 16년이다. 

그런 그에 대해 김춘수 전 회장은 항상 향우회의 중심축으로 일을 해왔으며 사무국장부터 부회장까지 지냈기에 향우회를 짊어질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안양 생활 20년은 그를 지역의 영향력있는 인물로 부각시켰다. 호계동 바르게살기협의회장으로서 동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 회장의 경륜이 뒷받침된 것이다. 마침 취재를 갔던 당일에도 자치위원회 회의 시간과 약속 시간이 겹쳐 시간을 조정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의 고향은 동이면 금암리 용곡 안골말이다. “아침 6시에 새벽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미국의 소리’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집을 나왔어요. 금암리에서 학교에 가려면 20리 길이라고 했거든요. 지름길로 가도 1시간30분에서 2시간 걸려요. 버스 노선이 아예 없었으니까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지요.”

당시는 부잣집 애들만 자전거가 있었다. 시간이 맞으면 자전거 뒤에 가방을 싣고 자전거를 붙잡고 따라가기도 했다. 그런 때는 운이 좋을 때다. 가방없이 맨몸으로 뛸 수도 있으니. 매일 등교가 이러니 군북과 동이 등 집이 먼 곳에서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지각대장이 되었다.

옥천중학교(16회), 옥천실고(19회)를 다녔던 6년간의 그 길은 골목까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옥천실고를 졸업한 후 취업을 위해 서울을 향했다. “고향에 손채화, 노영호, 심대보, 연근호 같은 친구들이 제 구실을 하고 있으니 고맙지요. 충청도 사람들은 마음이 천심인 사람들이에요. 다 내 마음 같아서 믿음이 가고요. 그렇다보니 좋아하게 되죠.”

부인 우영숙(50)씨와 함께 91세인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효자 이 회장은 이제 고향을 꿈꾼다. 늙으면 돌아올 곳이 고향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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