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희의 수필기행[4] - 대성산 3형제 폭포
조만희의 수필기행[4] - 대성산 3형제 폭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00.02.12 00:00
  • 호수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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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장마비를 기다려 왔다. 가슴을 치는 굵은 빗줄기와 함께 우둘둘 흘러 넘치는 기세 좋은 도랑물을 보고자 함이다.

창가에 우두먹 서서 내리 쏟는 주먹비를 바라만 봐도 가슴은 통렬히 열리지만 굵어지는 빗속을 살금살금 달리는 드라이브야말로 내가 승용차를 갖고나서 즐기는 은근한 취미가 되었다.

차창의 윈도 브러쉬가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쏟아 붓는 장대비는 전방 시야를 흐릿하게 하고, 우두두 길옆 도랑을 덮는 붉덩물의 아우성을 헤집으며 달리는 드라이브야말로 내가 근년에 터득한 별미인 것이다. 이때 러시아 민요를 차에 싣는 일을 빼놓아서는 안된다.

빗줄기가 더욱 창밖에 나댈 때 러시아의 국보적 가수 네스테렝코의 묵직한 중저음 베이스 선율을 차안에서 들어 보라! 그가 부르는 러시아 민요‘스텐카라친’'볼가강의 뱃노래'야말로 억수 장마 속에서 더욱 빛나는 우수의 미학을 들려주리니.

예전보다 여남은 날이나 긴 장마가 찾아 들었다. 이번에도 빗줄기가 거세게 몰아 치는 날엔 습관처럼 청산에서 관기에 이르는 505번 도로를 러시아의 가인 네스테렝코와 함께 달렸다.

그곳을 달리다 보면 굵은 빗줄기가 후둑후둑 내리 쏟는 날에만 어김없이 나타나는 동양화의 진경 산수화를 만나게 된다. 청산에서 조금 벗어나 대성리 못 미치는 왼편 산자락에는 맑은 날에는 흔적도 없던 폭포수가 큰 비속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 폭포를 보니 지난겨울 빙폭으로 만났던 대성산의 폭포가 문득 궁금해졌다. 대성산 치마폭에 숨어 있는 3형제 폭포는 1년 중 그 자태가 가장 빼어난 것이 장마 기간중이다. 그곳을 찾아보리라 결심하고 할머니 손 없는 날 기다리듯 빠꼼한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지리한 비 끝에 뜸한 휴일이 찾아 들었다. 옛날부터 큰 성인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대성산(大聖山, 705M)은 북쪽 고리산, 마성산, 장령산으로부터 울멍줄멍 달려 내려오다 머리하나 우뚝 세우며 이원면에 너부데하게 퍼질러 앉은 산이다.

따라서 이원면에 있는 학교치고 교가에 대성산 어쩌구 하는 가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마을 사람들은 대성산 정상을 데구름, 데구리 또는 덕운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먼저 이곳을 찾기 위해서는 이원면 소재지에서 양산 방면으로 달리다 개심저수지 못미처 대성초등학교 뒤편 길을 찾아야 한다.

이곳에는 의평리 마을이 있는데 마을을 벗어나 위쪽으로 승용차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서면 대성산 속살에서 슬며시 새어 나온 청간수가 담겨진 의평소류지가 나온다. 한데 이곳 맑은 못에도 어느틈엔가 낚시꾼들이 귀신처럼 찾아 들었다.

지난 겨울에 찾았던 그 산행의 잔영을 밟으며 대성산자락으로 들어섰다. 조그만 개울 따라 오르니 길섶엔 패랭이꽃 넌츨히 피어 미소로서 반긴다. 조금 더 오르니 군데군데 멍석 딸기 풀 그늘 속에서 슬그머니 익어가고 매미 녀석들 저희들만의 세상인양 우악지게 울어 제낀다.

같이 온 김화백은 연신“히야 월남 장글 속 같애!”하고 외치고, 김시인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었나!”하면서 마치 딴 나라에서 온 사람인 듯 허두른다. 드디어 제1폭포를 만났다.

이미 계곡 물을 보고 폭포의 자태를 짐작했지만 막상 바위를 싸안고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니 그 동안 쌓여왔던 세속의 찌꺼기가 일순간에 흩어지는 듯 하다. 첫 폭포의 특징은 바위를 넓지기 싸안고 미끄러져 내리는데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이웃 폭포에 비해 깊고 넓은 소를 이루어 물에 들어가면 제법 안기는 맛이 있다. 조금 오르면 제2폭포가 나온다. 제2폭포는 전형적인 폭포의 형태로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맛이 일품이다. 비록 높이가 그리 높지 않지만 큰비가 내린 뒤끝인지라 짜르르한 울음을 산자락 가득 내보내고 있었다.

제2폭포에서 치달아 올라 가파른 수직 암벽을 타 넘으니 드디어 내 일찍이 점찍어 놓은 제3폭포가 나타났다. 제3폭포는‘대성산의 선비’라 할만하다. 막상 이 폭포를 마주하고 보니 문득 새파랗던 젊던 날 설악산을 처음 찾았을 때의 치기가 떠오른다.

「입영하기 직전 어수선한 마음을 갈앉히고자 맘에 맞는 녀석과 함께 무작정 강원도로 스며들었다. 이때 만난 강원도는 그야말로 거대한 미로 속의 별천지였다. 내 나라의 풋풋한 인정과 인심이 골골이 배어 있었고, 산야의 모습은 조물주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곳이었다.

우리들은 며칠을 오대산 자락에서 헤매다 이름도 쩌렁 드높은 설악산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 맞 닿뜨린 설악산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특히 우주 저편에서 인간계로 스멀스멀 하세하는 토왕성 폭포는 온몸을 전율로 감싸기에 족했다.

우리는 토왕성 폭포를 직접 대면하는 것을 목표로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를 오르다 나는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산이 주는 위압감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설악산의 어느 곳도 더 이상 오르지 않기로 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계곡 속으로 흘러들었다. 세상과 단절된 계곡에서 둘은 순수 자연인이 되고자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어 던졌다.

걸치지 않은 자의 행복을 겪어 보지 않은 자가 어찌 알리! 그렇게 보낸 2박3일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황홀한 에덴으로의 침범이었으니.」

제3폭포는 30여m를 직강으로 떨어지다 일단 소에서 10여m 되는 언저리를 맞추어 그 속도를 죽인 다음 부채살처럼 흩어진다. 따라서 폭포 아래에서 위를 치어다 보면 동글동글한 물방울이 천상인의 환희작약하는 눈물인양 온 몸으로 달려든다.

한동안 이를 바라보노라면 그 옛날 멀직이서 지켜보며 전율하던 토왕성 폭포의 그 신비로움이 예서도 온몸 가득 느껴진다. 또한 폭포에서 5~6m 떨어진 곳에 폭포와 마주하고 서 있으면 온갖 기묘한 바람이 온 몸을 간지럽힌다.

순간 순간 다른 무게로 다가와 부딪히는 그 바람의 맛을 무어라 표현할 것인가? 한편 폭포 옆 벼랑엔 이곳의 장관을 읊은 시비가 이 답답한 문사를 조롱하듯 걸려 있다. 시비에 새겨진 옛시인의 감상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絶壁堂空險(낭떠러지 하늘 위험한 곳) 寒泉倒掛流(찬 샘물 걸려 흘러내리니) 殷殷雷鼓轉(은은한 천둥 소리 연이어 치고) 源雨滿山頭(비의 근원이 산머리에 가득 몰린다).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내려서는데 계곡에 웬 낯선 행락객 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예까지 오염원이 스며들었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나치려는데 이들이 우리들을 붙잡는다. 막상 이들의 호의를 접하고 보니 이들이야말로 내 기우와는 달리 누구보다도 산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전에서 왔다는 이들(류승현씨 일행)은 줄 곳 대전 주변에 있는 산들만 탐방하면서 내 고장에 대한 깊은 사랑을 키워 온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과연 내 고장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내 고장의 아름다움을 깊게 볼 줄 모르고 이름 높이 알려진 곳만 뜻도 없이 찾아 들고는 갖은 오염원들을 쏟아 놓고 오지는 않았는지 우리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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