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희의 수필기행[5] - 안내면 답양리
조만희의 수필기행[5] - 안내면 답양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00.02.12 00:00
  • 호수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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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가을은 성큼 다가와 온 들녘을 헤젓고 있다. 마치 빈센트 반 고호의 물감을 헬기로 좍 뿌려 놓은 듯 들녘은 온통 황금빛으로 불타 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을은 말이 필요 없는 계절. 그저 햇빛 담뿍 적시며 출렁이는 논둑 길을 걷거나, 여름 내내 보여 주던 진초록 제 빛깔을 감추고 한참 변장에 열중하는 과수원 길을 걸으며 무언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머리가 텅 빈 사람도 온갖 철학적 상념이 가득 차 올라 들녘의 곡식처럼 익어 가리라!

시인 이상(李箱)은 ‘권태’라는 수필에서 여름날 농촌을 에워싸는 진초록 색깔을 보고, 이것은 한가지 색밖에 쓸 줄 모르는 조물주의 몰 취미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비난했는데 이상이야말로 정작 총천연색 가을이 없는 먼 이국에서 살다 온 것은 아닌지?

아무튼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내 마음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날은 작열하는 태양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앓이가 심한 계절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허망하게 떨쳐 보내야 했던 서럽도록 고달픈 계절.

한 떨기 양심이 권력에 의해 잔혹스럽게 내동댕이 처지는 질곡의 세월 앞에 나 역시 무기력한 군상의 한 무리에 불과했으니 어찌 역류하던 그 세월이 부끄럽지 않으랴!

여름날의 그 어수선했던 마음을 털어 버리고자 절해고도의 섬(?) 답양리를 찾았다. 이름만 들어도 답답증이 생기는 답양리. 그곳에 이르는 길은 세 군데서 시작된다.

그중 하나는 청주에서 보은 방면으로 가는 길 중 수리티재 아래에서 시작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옥천에서 보은에 이르는 환상의 37번 도로를 달리다 호반길이 끝나는 지점 현리에서 시작되는 길이다.

셋중 나머지 하나는 솔밭이 그윽한 소정리에서 막지리 방면 배를 타고 장고개 뒷산을 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곳 제 몸 하나 가벼이 답양으로 안내하지 못하니 답양은 그저 세속의 저편에서 탐방객을 골려 먹는 재미로나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쨌든 현리로부터 답양을 찾기로 했다. 현리에서 10여 리쯤 달리다 답양이라 쓰인 이정표 만나 좌로 꺾어드니 고갯길이 할머니의 트레머리처럼 구불져 나타난다. 그 고갯길 딛고 둘러보니 이미 폐교가 된 용촌초등학교가 코앞에 계면스러이 다가선다.

갈바람에 알밤 쏟아져 내리듯 아이들 함성 지천으로 터져 나와야 할 그 교정엔 난데없는 건설 장비만 잔뜩 쌓여 살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나마 용촌초등학교부터는 비포장길이다. 비포장 길 따라 툴툴툴 달려 답양에 이르니 이곳에선 색깔보다는 빛이 먼저 계절이 바뀌었음을 통보하고 있었다.

산모롱이 넘어 내리 쬐이는 햇빛은 이미 한 여름날의 그 오만 방자했던 힘은 찾아볼 수 없고 솔솔한 볕만이 언덕배기 한켠에서 슬그머니 제 이름을 내 보일 뿐이었다.

아! 여기 어드메쯤인가? 이곳은 강원도 어느 두메 산골의 기세 높은 산들을 뚝 떼어다 놓고 짐짓 모른 체 제 스스로 갇혀 지내는 은둔의 땅은 아닐런지? 허나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양지골, 논골, 위터골, 화골 등을 둘러보며 만난 사람은 산 구름 닮은 할머니들 뿐이다. 한데 산에 에둘려 사람을 만났는데도 괜시리 죄스러워 말길 함부로 열지 못하겠다.

전설 이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아 살아왔을 그들의 이야기 죄다 들으면 누군들 감동적인 장편 소설 한편 엮지 못하랴만 난 그들이 살아 온 이야기는 묻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길 따라 가니 금방 가산사가 눈앞에 다가선다. 소문 쩌렁함에 비해 가산사는 의외로 단촐했다.

한때 의병장 중봉 선생과 영규대사가 서로 만나 시국을 걱정하던 호국 불사로 널리 알려진 가산사는 당시의 처연했던 숨결을 멀리한 채 고즈넉히 새로운 세월을 응시할 뿐이었다.

가산사에 들어서면서 내 시선을 빼앗은 것은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물봉선 무리였다. 지난해에 겨우 그 고운 이름을 알아냈는데 예서 그 많은 꽃 무리를 만날 줄이야!

부처님께 경배하고자 대웅전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고민이 된다. 불단에 돈을 놓고 절을 해야 되는지 주뼛거리다 그냥 절만 하고 나왔다. 한데 이곳에는 스님은 뵈지 않고 할머니 보살께서 반가이 합장하며 맞이한다.

그는 세살바기 엄지만한 토종 산밤을 한 소쿠리 내 주며 먹기를 권한다. 툇마루에 앉아 밤 맛을 즐기는데 할머니께서는 한 되박은 더 됨직한 밤을 내오며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심사까지 배려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먼길에서 돌아온 손주 대하듯 노파의 눈길은 자비롭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가산사에 진짜 부처님이 계셨던 것이다. 순간 나는 부끄러워 법당으로 되 들어가 부처님 앞에 지전을 모셔 놓고 또다시 정중히 절을 하며 보시의 참뜻을 새겼다.

새삼 이곳에 절이 놓여 있는 뜻을 알겠다. 정말이지 눈을 들어 둘러 볼 적마다 답답증만 절로 이는 답양리에 가산사마저 없었더라면 어찌할 뻔했는가? 답양리를 뒤로 한 채 내처 막지리까지 가 보기로 했다.

답양에서 막지로 가는 길은 차 한대 겨우 비집고 가는 험한 길이다. 꼬불꼬불 숲을 헤치고 산을 넘는데 웬 까투리 한 마리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도로를 건넌다. 세속과의 경계를 알림인가? 드디어 고개를 넘었다.

한데 이곳은 대저 어디란 말인가? 몰래 침범해 온 것도 아닌데 가슴은 속절없이 둥당 거리고, 함께 따라 나선 아마추어 화가 정여인은 시종 상기되어 절절 맨다. 김화백도 돌연 바빠지기 시작했다.

산굽이 휘돌아 잠긴 대청 호수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루터 석호리도, 솔밭 소정리도 모두 발아래 놓인 그 정경을 어찌 필설로 표현하랴!

우리는 겨우 감정을 추스려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얼만큼 내려오다 보니 뜻밖에도 산비알 가득 메밀밭이다. 효석이 달빛 아래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다던 그 메밀꽃이 아니던가! 애써 참았던 우리들의 감정은 예서 폭발하고 말았다.

모두들 후다닥 메밀밭으로 뛰어 들었다. 이미 사춘기 소녀가 되어 버린 정여인의 웃음소리는 메밀밭에서 더욱 하얗게 빛나고, 김화백의 스케치북에는 천하의 비경이 점점이 내려와 붙 박혀 들기 시작한다.

효석의 마을 봉평에는 하릴없는 낭만주의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메밀밭을 조성해서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소설 속의 그 장면이었다. 영화 서편제를 예서 찍었더라도 극중에 나오는 사철가는 대히트 했으리라.

가을은 먼저 불러 세우는 사람이 임자다. 영혼이 가난한 사람들은 뒷동산에라도 올라 노오란 마타리를 만나보라. 가을의 신사는 뭐니뭐니해도 홀쭉이 키만 큰 마타리꽃이려니. 그 꽃 만나고 온 날 세상이 다 평화스러울지어다.

가을은 상처받은 영혼을 아우르는 비약이 도처에 숨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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