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쏟아낼 대상이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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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 세상 [138] 두루미와 사랑에 빠진 사진작가 황규선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5.12.30 00:00
  • 호수 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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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규선(왼쪽), 김옥실씨 부부.

사각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필름이나 혹은 다른 저장장치에 공간과 사물을 담고 시간을 정지시켜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사진이 주는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잊어버리거나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공간(사물), 혹은 시간이라면 더욱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사진작가 황규선(57·충일개발 회장)씨는 이제 손에서 사진기를 내려놓을 수 없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아 놓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남은 삶의 ‘목적’이 돼버렸다.

여행사진공모전 사진인생에 ‘전환젼
황 작가가 처음 사진기를 접한 것은 공군교육사령부 사진반에 근무하면서다. 그 전에도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어두운 암실에서 흑백사진의 현상과 인화까지 배우게 되었으니 제대로 사진을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 후에도 바쁜 일상을 쪼개 취미삼아 사진촬영을 다녔다. 좋아하는 풍경이나 고택, 일출과 일몰 등이 주로 피사체가 되었다. 그러다 6년 전부터 좀더 전문적으로 사진공부를 시작했다. 대전대, 목원대,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일반 사진부터 디지털카메라까지 접할 수 있었고 흑백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조임환 선생으로부터 개인 교습도 받았다.

당시 응모했던 공모전 중 특히 2002년 대한항공 주최 ‘여행사진공모전’은 그의 사진 인생에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런저런 공모전에 시큰둥해질 당시였는데 주위의 권유로 작품을 출품해 ‘금상’을 수상했다. 7천여 점의 작품이 출품돼 경쟁도 치열했지만 심사위원이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유경선 교수였다는 점에서 수상이 더욱 기뻤다.

“그냥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사진을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시는 분에게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냥 기쁘더라구요. 그리고 내 작품에 대한 평가를 다시 받아보고 싶었어요.” 그때까지 국전(대한민국 사진대전) 출품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여행사진공모전 수상이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에 불을 댕겼다.

사진은 창작예술이다
국전 출품을 마음먹고 제일 먼저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사진은 창작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더라구요. 일상적으로 그냥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은 더 이상 작품으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무엇인가 좀 다른, 그 무엇을 찾는데 집중했어요.”

황 작가는 자신을 표현해 줄 피사체로 제일 먼저 철새를 떠올렸다. 해남의 고천암 등 철새도래지를 찾아 셔터를 눌렀다. 군무로 유명한 가창오리도 앵글에 담아보았지만 맘에 차는 작품을 건지진 못했다. 모두 확 잡아당기는 맛이 없었다. 개체가 너무 작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것이 ‘두루미’다. 흑두루미나 재두루미가 아닌 그냥 ‘두루미’. 「몸길이 136∼140cm. 온몸이 흰색이고 머리꼭대기는 피부가 드러나 붉고 이마에서 목에 이르는 부위는 검다. 날개의 안쪽 둘째날개깃과 셋째날개깃은 검정색이고 나머지는 흰색이다.」

백과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는 건조한 설명만으로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자태가 빼어나다. “처음 딱 보았을 때부터 ‘아∼ 내가 평생 찍어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우아한 자태와 날개 짓은 정말 신비로 왔죠."  그 두루미를 곁에서 바라보며 황 작가는 피사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 황규선씨가 열정을 갖고 사진으로 담아낸 두루미

두루미와 사랑에 빠지다
“지난겨울 중 2/3 는 철원에서 보낸 것 같아요. 고생도 무척 많이 했죠. 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가는 수로에 몸을 숨기고 꽁꽁 언 김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두루미가 출입이 자유로운 곳에 머물거나 자신의 곁을 쉽게 내주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렇다. 처음 철원을 찾았을 때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에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는지 몰라 주변을 맴돌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오랜 공을 들여 다행히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마을 이장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을 찾는 두루미에 푹 빠져 먹이도 주고 잘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그의 도움으로 촬영 현장까지 접근하는 것은 해결을 보았다. 제대로 두루미 곁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들뜬 마음으로 이장 집에서 머물며 비교적 촬영조건이 좋은 농막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촬영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촬영허가를 받고 현장을 찾은 사진기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별수 없이 돌아와 오후에 수로로 찾아들어갔다. 허허벌판 논과 논 사이에 있는 수로에는 골바람까지 몰아치고 있었다. 무척 예민한 두루미는 손 난로 하나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집사람한테 이장이 그러더래요. 세 시간 넘게 있으면 동사할 지도 모른다고. 빨리 가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제가 그 때 한 네 시간 정도 있으면서 찍었으니까요.” 그 모든 고생을 감수할 만큼 두루미는 인화지에 붙잡아 두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걷고 나는 모든 모습이 신비로웠고 간혹 기류를 타고 올라 선회 비행을 하는 모습이라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난겨울 내내 고생을 하고 공을 들여 나온 작품이 바로 대한민국사진대전 입선작 ‘비하’다. “특선 수상작을 고르는 3차 심사까지 올랐다는 것도 기뻤구요. 여하튼 국전에서 입선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흥분되더라구요.” 올 연말도 황 작가는 철원에서 보낸다. 두루미를 찍기 위해서다. 국전 입선으로 두루미와의 인연이 끝이라면 진정 사랑에 빠졌다고 어찌 얘기할 수 있겠는가? 내친 김에 두루미보호협회에도 가입해 활동할 정도로 두루미는 이제 그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열정 쏟을 대상 있다는 것 ‘행복’
“이제 현직에서 은퇴할 날이 가까워지는데 사진이라는 취미를 갖고 있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해요. ‘목적’ 있는 삶이 좋잖아요.”

본격적으로 사진에 푹 빠지면서 삶에 힘이 붙었다. 10∼20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을 느낀다.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후 보정 작업을 하느라 밤 12시, 1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일쑤여도 끄떡없다. “어쩔 때는 제가 밥을 컴퓨터 앞에 갖다 줘야 할 정도예요.”

곁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간혹 가물가물한 기억이 있을 때 곁에서 확인을 해주던 아내 김옥실(54)씨가 이번엔 한마디 거든다. 그래도 그런 열정적인 남편의 모습이 싫은 눈치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 김옥실씨 역시 황 작가와 함께 사진공부를 했다. 누구보다 황 작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든든한 동료다. 해남, 서산, 철원 등 황 작가가 들려준 촬영 여정 모든 곳에 동료로서 김옥실씨가 함께 했다.

“일출이나 일몰을 찍은 사진 중에는 제 사진이 더 나은 것도 있어요.” 김옥실씨는 한마디 툭 내뱉고 쑥스럽게 웃는다. 둘의 정겨운 모습이 시샘 날 정도다. 대화 내내 황 작가는 두루미의 습성과 이동경로, 관찰 적기와 장소 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쏟아냈다. 지면 관계상 모두 수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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