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9정맥' 종주 끝냈다
'백두대간·9정맥' 종주 끝냈다
함께사는 세상 [135] 산악인 박무종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5.11.04 00:00
  • 호수 7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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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당 시계포에서 만난 박무종씨가 3년간의 산행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산을 오른다. 가파른 고갯길을 즈려밟고 이 땅의 기운을 느끼면서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산줄기를 올랐다. 그는 과거 우리의 역사와 또한 수천 년을 지켜 온 이 땅의 자연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굽이쳐 온 자신의 인생사를 정리했으며, 분단된 민족으로서 절대 절명의 과제인 통일에 대해 다시 생각을 다졌다.

아! 통일이 되어 북한의 1정간과 4정맥까지 오를 수 있다면, 그래서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바이칼 호수에 갈 수 있다면... 그의 꿈은 이미 만주벌판을 내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무종씨는 등뼈인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갈비뼈에 해당되는 9정맥을 완주했다.

어떤 인증서도 누가 증명해 줄 사람도 없었지만, 그것은 그와의 굳은 약속이었다. 뭐 별거 아닌데 이렇게 취재까지 나왔냐며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1대간 9정맥을 완주한 그의 경험담은 개인의 추억으로만 덮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조그만 시계포를 들러 그가 겪은 몇 년간의 산행에 대해 가만히 들어봤다.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있게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참 건강해 보였다.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고 ‘심봤다’라고 산날망에서 크게 외치는 것 마냥 그가 백두대간 9정맥 종주를 마치고 쓴 두꺼운 보고서의 ‘1대간 9정맥 종주 끝냈다’는 제목은 그런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 10월30일부터 2001년 10월15일까지 장룡산악회 양기환, 박대용, 김병일씨와 함께 도상거리 672.7km(시간 306시간 25분, 34회 등산)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후, 혼자서 시작한 산행이었다.

‘2005년 10월9일’, 도상거리 2086.4km(시간 972시간 42분, 121회 등산)의 남겨진 9정맥까지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3년8개월 가량의 자신과의 끊임없는 사투였다. 큰 위업을 달성한 박무종(59·부산당 시계포 대표)씨,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9정맥 등반을 혼자서 시작한 동기를 이렇게 얘기한다.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끝내고 나니까 또 다시 내 나이 환갑 전에 9개 정맥을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백두대간 종주 산행 때는 3명의 일행과 같이 끝냈지만, 9정맥은 혼자서 해보고 싶은 생각으로 시작했다. 여러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기도 하지만, 단독종주의 성취감과 자부심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 그의 글에서.

2002년 2월24일 새벽 4시 옥천에서 출발, 호남정맥의 최남단인 전라남도 광양군 전월면 망덕리 섬진강하구 덕산사 사찰진입로에 들어선다. 9개 정맥 완주의 철 발걸음을 옮긴 셈이다. 그는 등반을 시작하기 전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했다.

더듬더듬 아들, 딸에게 도움을 청해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확한 등산로와 시간 등을 확인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등산했다. 한북, 한남정맥 산행을 할 때는 군사지역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을 지나게 돼 군인들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고, 땅 사러 다니는 아저씨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는 3년 8개월 동안 등산을 하면서 새 삶을 살았다고 했다. 기실 혼자 한 이 완주는 인증서도 어떤 증명서도 없다. 하지만, 어떤 증명서가 또 필요하랴? 그는 이미 온 몸으로 완주를 증명해내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정맥 발걸음은 비껴갈 수는 없고, 정확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였습니다.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자랑스럽게 내 보일 인증서도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었고, 또, 단련이었고, 내 인생의 작은 성취이자 소중한 기록이었습니다. 나는 약속을 지켰고, 이 순간 행복합니다. 그 잔향이 오랫동안 내 삶에 은은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그가 꼼꼼히 작성한 보고서를 읽다보면 그가 느낀 것이 단지 자부심과 성취감이 아니라 그 이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났고, 각 지역의 생활문화를 돌아봤으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몸으로 체득했다.

“금북정맥 산행 때였습니다. 진천군 옥정현 고개에서 가을밤 7시30분께 차를 세워보았지만, 아무도 서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냥 지나갔다 다시 되돌아온 분이 있었습니다. 목적지까지 태워주고 택시까지 연결해 준 갤로퍼 박용현 기사님, 그리고 호남정맥 산행때 장흥군 제암산 하산하던 날 민박집을 물었는데, 자기 자택으로 손수 안내하여 다음날 아침밥과 도시락까지 싸준 금호고속버스 김남일 기사님, 아주머니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도 구구절절하게 느낀 것을 보고서에 담았다.

“정맥길에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많다. 동물 포획을 위해 올가미를 설치해 나도 넘어질 뻔 했지만, 걸려든 너구리가 기진맥진하는 모습을 보고 참 안타까웠다. 또, 잘 보존되어야 할 정맥 능선이 파손된 곳도 한 두곳이 아니다. 시설물과 개인영리 사업장으로 또 납골당으로 완전히 끊긴 곳이 있다. 백두대간 맥은 정부차원에서 보존하려고 법제화했지만, 정맥은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 그의 글에서.

그는 등산을 다니면서 인상적인 곳으로 ◆부산 구포 역전 앞 원조 돼지국밥집 국밥 ◆고양시 근교 원당빌딩 5층의 대중 싸우나 찜질방 ◆강원도 영양지방의 하늘을 찌를듯한 적송 등을 꼽았다. 홀로 한 산행이었지만, 그것이 혼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마지막 감사의 말도 잊지 않는다.

“장룡산악회 회원님들, 옥천읍 체육회 김광성 회장님, 성일테니스, 해병전우회, 그리고 2002년 11월4일 첫눈을 맞으며 축하산행을 함께 해줬던 갑식이 친구와 산행을 내조해 준 아내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는 또 새로운 꿈을 꾼다. 1대간 9정맥 4기맥 중 마지막 남은 한강기맥, 금남기맥, 영산기맥, 땅끝기맥 등 4기맥을 다시 한 번 완주하는 꿈을 꾼다. 또,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에 있는 1정간 4정맥을 오르고 싶은 마음도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돼 지리산에 이르는 줄기를 국토의 기둥 산줄기로 이해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성호 이익이 처음 이 말을 썼다. 1769년 여암 신경준에 의해 산경표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대간(백두대간), 1정간(장백정간), 13정맥(남한 9정맥, 북한 4정맥-청북, 청남, 해서, 임진북 예성남정맥)으로 나뉜다. 대간은 큰 줄기, 정맥은 물줄기를 나누는 산줄기로 강을 건너는 법이 없다. 가령 한남금북정맥은 한강의 남쪽, 금강의 북쪽에 있는 산줄기라는 뜻이다.

현재 교과서에 배우고 있는 태백산맥, 차령산맥 등의 산맥개념은 1903년 일본인 고또 분지로의 조사를 바탕으로 지질학적인 입장을 반영해 만든 것인데 지하자원 약탈을 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그래서 땅속으로 지질이 이어지면 강을 건너서도 산줄기가 이어지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박무종씨가 등반한 정맥은 ◆호남정맥(전남광양-전북인안, 219시간 15분) ◆금남호남정맥(전북진안-경남함양, 31시간51분) ◆금남정맥(충남부여-전북진안, 66시간 24분) ◆금북정맥(충남태안-경기안성, 137시간 52분) ◆한남금북정맥(경기안성-충북보은, 80시간 15분) ◆한남정맥(김포월곳면-경기 안성, 78시간 28분) ◆한북정맥(강원철원,화천-파주교하, 77시간 50분) ◆낙남정맥(김해상동-경남하동, 102시간37분) ◆낙동정맥(부산다대포동 몰운대-강원태백, 177시간11분) 등 9개 정맥으로 혼자서 완주한 것은 전국에서도 몇 사람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문 기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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