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여울, 장금소여울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여울, 장금소여울
끈질긴 생명력으로 여울은 그곳에 있었네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05.10.28 00:00
  • 호수 79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남면 쪽에서 보자니 금강을 따라 거쳐간 마을이 꽤 여러 곳입니다. 동이면 우산리로부터 청성면 고당리, 합금리를 지나 안남면 지수리, 종미리 미산과 종배를 지나왔습니다. 금강소수력발전소 바로 아래 우산리 지매골여울로부터 한쪽은 동이면·청성면·안남면 등 3개 면을 거치지만 강 건너편 강물이 휘도는 안쪽은 여전히 동이면입니다. 동이면 조령리에서 청마리, 딱 두 개 마을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중 행정구역상 청마리에 접한 마을이 계속됩니다. 갈마골 역시 청마리의 한 자연마을입니다. 수많은 얘깃거리와 사람들의 애환이 얽힌 청마리 여울은 이곳 갈마골에서 끝이 납니다. 갈마골여울과 장금소여울은 여울지기 정수병씨와 안남면 연주리 독락정에 살고 있는 조장석(70)씨가 함께 했습니다.

▲ 금강을 건너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정취를 느끼게 하는 갈마골 여울. 강건너가 갈마골이다. 정수병(왼쪽)씨와 조장석씨.

젊은 사람들은 이제 여울을 모른다. 여울의 추억이 가물가물해져 가기 때문이다. 금강을 따라 예부터 사람들이 건너던 여울이 자꾸 잊혀지는 것은 대청댐이 주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청댐은 대청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면서 금강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를 앗아 갔다.

#장금소엔 아직도 금덩이가 있을까?
“여기서 금이 많이 났다고 그래요. 큰 놈은 호박씨만한 것도 있었고, 고추씨만한 것도 가끔씩 나왔다는 거예요. 금이 많이 나와서 옛날부터 소문이 자자하던 곳인데요.”

안남면 연주리 마을 이름이 정해진 정자 독락정이 있는 곳에서 대청호를 따라 자갈길로 들어섰다. 조장석씨는 대청호 강변 길이 막혔을지 모른다고 걱정이다. 지난 여름 물이 길 위로 넘어 쓰레기가 길 위에 쌓여 막혔을 것이라는 거였다. 과연 쓰레기 더미가 보인다. 길을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가보자! 무작정 들어섰더니 군에서 치웠는지 길 옆으로 쓰레기는 치워져 있다.

조장석씨가 말한 장금소는 독락정에서 가다 보면 갈마골을 3분의2쯤 가서 있을까? 평소같으면 물 가운데 큰 바위가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대청호 물이 그만큼 올라온 탓이다.

이곳 언저리에 있는 장금소여울은 그닥 큰 여울은 아니었다. 종미리 종배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가운데여울을 건너서 고자끝의 낮은 고개를 넘으면 바로 와닿는 곳이 장금소여울이었다.

여울을 직접 건널 일이 별로 없었으나 세밑여울을 건넌 나뭇짐을 실을 소는 고자끝을 휘돌아 강변으로 난 길을 따라 갈마골까지 갔다. 나무하러 스쳐 지났던 곳이 장금소였고, 장금소여울이었다.

“한자로 따지면 장금소(藏金所) 아니었나 몰라. 금이 숨겨져 있는 곳이라는 뜻 아니겄어? 그나저나 사금을 캐려도 기술이 있어야 하는겨! 사금틀을 삐딱하게 해서 이렁이렁하면 나오더란 말이지.”

조장석씨의 한 마디지만 어렸을 적 사금캐는 것을 보았다는 염석균(84·안남면 종미리 종배)씨의 말을 빌면 그럴듯한 해석이다. 장금소에 못미쳐 길을 막았던 나무쓰레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다. 정수병씨와 조장석씨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옛날 같으면 물에서 흘러내려온 나무쓰레기는 훌륭한 땔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 뿌리까지 캤고, 먼 산에까지 가야 했던 상황에서 강가에서 발견한 쓰레기는 그야말로 횡재였던 것이다.

“물에 떠내려온 나무 쓰레기는 훌륭한 땔감이었어요. 마디기도 하고, 잘 타고.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에 따라 주인이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세비라고 불렀는데 내 거다 하고 표시만 해놓고 다음날 와서 가져갔거든” 하는 정수병씨에 조장석씨가 맞장구다.

“그거 표시 해놓으면 누가 가져가지도 않아. 에구! 늦었구나, 아깝다 했지.”

그만큼 없이 살았어도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었다.

#물에 잠긴 갈마골여울 천년 산중 품은 듯
바람이 제법 인다. 찰랑찰랑 물소리와 갈대 이는 소리가 어울려 가을소리가 났다. 갈마골여울에 다다른 풍경은 어느덧 천년산중의 입구에 있는 듯했다. 해는 이미 중천이고, 갈마골여울로 내려서는 중간까지 물은 들어차 있다. 이 길로 갈마골을 들어섰다.

갈마골 사람들이 이 여울을 통해 안남장을 오갔고, 도농리 싸리재를 넘어 원남장을 봤다. 거꾸로 독락정 사람들도 이 길을 건넜다. 옥천장에 가기 위해서다.

독락정 사람들이 옥천장을 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갈마골여울을 건너 강변길을 건너 씨구목을 넘어 덩기미로 해서 옥천장에 가는 것, 또 한 가지는 안남면 소재지 쪽으로 나가 점촌과 비들목재를 넘어 피실여울을 건너 옥천장에 가는 것이다.

두 갈래 길 중 갈마골여울을 건너 씨구목으로 가는 길이 독락정 사람들에게는 더 가까운 길이었다. 여울을 건너지는 않았으나 강변을 따라 난 길을 지금은 없어진 마을, 연주리 괴생이(고성) 사람들도 안남장과 원남장을 보았다. 조장석씨가 괴생이 마을에 살던 사람이다.

“그때 콩 서너말씩 메고 싸리재 넘어 원남장에 가려봐! 헉헉댔어.”

이때만 해도 갈마골과 골짜기 위 탑산이, 윗청동에는 근 30호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다 했다. 생활력이 강했던 갈마골 사람들은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길러 연주리 쪽에서 주로 쌀농사를 지었다.

“오죽했으면 갈마골 사람들이 연주리뜰 다 산다고, 들 다 빼앗긴다는 소리가 나왔을까?”

대청호 물이 채이기 전에는 연주리 앞뜰에 갈마골 사람 논이 많았단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대청호가 생기고 나서이다. 연주리 앞뜰은 수몰선으로 편입돼 버리고 농토를 잃게 되자 갈마골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 대처로 떠나버린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이제는 두 가구가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요즘은 안 춥지. 예전에는 어찌나 추웠던지 갈마골 앞 강변이 얼면 육지가 되잖어. 겨울이면 갈마골 사람들은 괴생이를 가고, 괴생이 사람들은 갈마골에 놀러가고, 서로 어울려 좋았지.”

조장석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전화로 만난 염창식(68·옥천읍 거주, 갈마골 출신)씨는 아름다운 고향 갈마골에 대해 줄줄줄 얘기를 풀었다.

“비가 오면 탑산이하고 갈마골 사이에 15m는 되는 폭포가 아주 장관이에요. 지금 갈마골에 사람 많이 살면 아마 관광지로 유명해졌을껴!”

골짜기 폭포가 장관인 곳, 천년산중 입구에 있는 듯한 갈마골여울로 내려가는 길은 여전히 훤하다. 봄 갈수기면 아주 가끔 여울 구실을 하는 때가 생긴다. 여울은 제 모습을 드러내며 길을 안내한다. 갈수기 대청호 물이 잦아들면 사람은 물론 경운기로 안남을 오갈 수 있는 길이 갈마골여울이다.

대청호에 잠겼어도 물길여울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신을 드러내 물길 구실을 하고 있다.

[금강에서 만난 사람] 어부 주영현·김미희 부부

   
▲ 주영현, 김미희씨 부부
바람이 세게 불으니 제법 쌀쌀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안남면 연주리 독락정에서 대청호를 따라 자갈길로 들어서니 독락정 싸리소 바로 아래로 금강 어부가 쳐놓은 그물이 보인다. 잠시 후 그 주인공이 보였다. 사진기를 들이댔다. 물 가운데서 “여울 취재왔어요?” 하는 질문이 와닿았다.

“고기 잘 잡혀요?”
“웬걸요? 꺽지만 몇 마리 잡았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잡아서 그런가요.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영 시원찮네요.”

바람이 부는 날은 어획량이 그리 시원치 않아 오늘은 일단 배를 돌릴 모양이다. 금강의 어부 주영현(42)씨와 부인 김미희(40)씨.

“여울요? 요 밑에 뭐라고 하나요? 우리는 그냥 갈마골여울이라고 하는데. 그 밑에 가면 씨구목여울도 있구요.”

여울은 어부들에게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곳이다. 여울에 있는 모래, 자갈에 고기들이 산란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울은 어부들에게 직접 관련을 맺고 있는 삶터였다.

“여울이 있어야 해요. 갈수기 때는 갈마골여울로 경운기를 끌고 직접 건너기도 하는걸요.”

사진찍기를 수줍어하는 부인 김미희씨를 윽박질러(?)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다. 차를 도로에 세워놓은 채 내려왔더니 비켜달라며 어느새 트럭 한 대가 ‘빵빵’ 소리를 낸다. 어쩔 수없이 간단한 대화를 끝내고 길을 올라서니 배가 천천히 멀어져 간다. 금강 얘기가 새롭게 들려 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