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끝에 만나 본 김흥태씨 가족
새천년 끝에 만나 본 김흥태씨 가족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2000.01.01 00:00
  • 호수 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 오전 10시쯤 되면 농협 사랑방 앞에는 차가 멈추고 한쪽 다리가 불편한 김흥태(83·옥천읍 마암리)씨가 아들의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오후 4시30분쯤 되면 다시 아들의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10년이 넘게 계속되어온 이런 모습을 지켜 본 농협 사랑방 박재범 총무는 "요즘에 참 보기 드문 젊은이예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들 아니면 며느리나 딸이 번갈아 가면서 한쪽 다리를 못쓰는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모셔가니, 다른 젊은이들도 좀 본받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저녁 6시가 다된 시간 찾아간 집에는 김흥태씨와 부인 박금열(69)씨, 아들 김두영(36)씨, 며느리 송영희(36)씨가 함께 앉아 있었다. "쑥쓰럽지요. 이게 신문에 날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김두영씨는 취재가 어색한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3명의 손자, 손녀를 앞에 앉히고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70년이 넘는 세대간의 차이지만 한폭의 잘그려진 풍경화처럼 근사한 모습이었다.

"저도 10년이 넘도록 하다 보니까,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아버님을 모시러 갈 시간이 되면 그냥 일어서게 되고, 못가게 되면 누님(김숙현·47)에게 부탁하거나 아내가 가구요." 이런 남편의 모습을 아내 송영희씨도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눈치다. "옆에서 보면 항상 걱정하고 신경 쓰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아요." 김두영씨는 특별한 효도보다는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가 마음 편안하게 오래 오래 사시는 것을 바란다고 말한다.

이제 금은보화를 가져다 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아이들하고 손주들이 모두 몸이나 건강하게 살았으면 아무것도 바랄게 없어요." 김흥태씨에게 새천년을 강조하며 바람을 묻자 의외로 소박한 희망을 얘기한다.

2천년을 함께 맞는 김흥태씨 일가, 세대의 간격이 점점 더 멀어지고, 연결고리 또한 점점 약해지면서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얘기되는 지금. 천년의 시대가 끝나기 이틀 전에 만나 본 한 가족에게서 그런 고민과 걱정이 아직 일반화 되기에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