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옥천군, 저항권에 직면하다
[기자의 눈] 옥천군, 저항권에 직면하다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09.09 00:00
  • 호수 7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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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월의 첫날, 눈부시게 높고 푸른 가을하늘에 절로 휘파람이 나올 것 같던 바로 그날, 사정리를 찾은 기자의 심정은 참담했다. 이 날 (주)현암레미콘이 진입로 공사를 시작했고 사정리 주민 수 십 명이 이를 항의하기 위해 농로에 모여 있었다.

사업자가 공사를 시작하리라는 것도, 주민이 이를 방관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어느 정도 예상 했던 일들이니 참담할 것까지는 없었다. 나락 수확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런 공사로 경운기가 농로 가운데 묶였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할머니의 모습도 안타까웠지만 참담함에 미치지는 않았다.

9월의 첫날 사정리에서 기자를 참담하게 만든 것은 사업자도 아니고 사업자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2. 
그 광경을 구경하던 노인이 있었다. 낡은 50cc 오토바이에 삽이며 호미 같은 농기구를 싣고 농로입구에서 상황을 살피던 노인은 잠시 후 이제 일하러 가야 할 시간이라는 듯 조그만 오토바이를 도로 쪽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그에게 시선이 머무는 순간 레미콘 차량이 지나갔다. 거대한 기계 앞에 본능적으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레미콘 차량들이 지나는 사이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도로에 자신의 오토바이를 올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수십 톤의 거대한 차량에 맞서 목숨을 부지하려는 그 모습은 절박했다. 그리고 참담함이 밀려왔다. 기자로서 이 순간까지 무엇을 했는지 비참함을 피할 수 없었다.

#3.
군은 이 순간 까지도 법적하자 없는 행정행위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자! 이제 옥천군의 완전무결한  행정행위가 펼치는 진풍경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합법적인 공장승인에 합법적인 공사 진행이다. 사업자는 합법적 진행을 방해하는 모든 실력행사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옥천군 담당공무원은 인터뷰조차 거부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공사방해로,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몇 사람이 본보기가 되는 일, 법의 무서움을 톡톡히 맛보게 하는 일일까?

#4.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정리 주민들이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맞서 저항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한다. 저항권이 사정리에서 행사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근본원리, 자연법에 뿌리를 둔 가장 숭고한 헌법의 명령인 저항권이 바로 우리 곁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에 올라 탄 노인의 겁먹은 눈빛에서 너무나 꾸밈없는 저항권의 원형을 발견한다. 군은 이제 사정리 주민의 저항권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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