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알코올 중독자다"
"난 알코올 중독자다"
함께사는 세상 [131] 어느 알코올 중독자의 고백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09.02 00:00
  • 호수 7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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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알코올 중독자의 고백

넌 네 아버지의 눈을 가졌다는 걸 모르겠니?
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었지.
네 어머니는 그 모든 걸 속으로 참다가
결국 모두 포기해 버렸지...

Don't you know you've got your Daddy's eyes
And your Daddy was an alcoholic
But your mother kept it all inside
Threw it all away...

-록그룹 스타세일러(Starsailor)의 곡  Alcoholic(알코올중독) 중에서

본 내용은 취재원의 요청에 따라 초상권과 실명을 보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그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안색은 건강했고, 눈빛은 맑았다.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바대로 그는 한때 술을 많이 마시던 사람이었으며, 지난 22일로 술을 끊은 지 1주년이 되는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이웃이라는 인상은 그와 대화를 시작한 뒤로도 한참이나 지속됐다. 그가 점심이나 들자며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그 소박한 편견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 최근까지 그에게 일어났던 낯선(?) 일들이 식탁 위의 밥공기를 열자 흰 김과 함께 모락모락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적의 ‘밥 두 공기’
“아줌마 공기 밥 하나 더 주세요!”
찌개가 아직 다 끓지도 않았는데 그는 벌써 공기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한 끼에 밥 두 공기 먹는 것이야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적어도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그렇습니다. 술 말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겐 말이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숟가락은 밥과 찌개를 오가며 맛있는 점심식사를 이어갔다. 밥맛을 잃은 사람이 보았더라면 식욕이 돌아올 만큼 ‘맛있게’ 먹었다.

“점점 안주를 멀리하게 됩니다. 결국은 술만 먹어요. 예외가 없어요. 병원을 찾는 중독자의 90% 이상이 영양실조에 빠져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나 역시 그랬죠. 스스로가 술 말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곧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살아서 밥을 먹거나 아니면 죽거나...”

비록 최근에 와서야 가능해진 일이지만 어찌됐던 그는 살아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다.

지독하게 술 마시는 사람
밥 한 공기 비우기조차 힘들게 된 것은 3년쯤 전의 일이었다. 고향 옥천에서 가정을 지키며 평범한 삶을 살던 그에게 술 역시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3년 전 그 무렵부터 사람들은 그를 ‘지독하게 술 마시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선배들과, 또 후배들과 마실 때 같이 마시고, 취할 때 같이 취하며 자연스럽게 술을 마셨어요.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늘 술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게 되고, 사람들이 나와의 술자리를 피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땐 이미 늦었다는 걸 몰랐죠.”

하루 온 종일 술이 없는 생활은 불가능했다. 그의 몸은 오직 술과 소금, 맹물만이 식도를 건너 위에 이르는 것을 허락했다.  몸은 완전히 망가졌고 아내와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찾은 병원에서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경화 초기의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입원한 병원에서조차 몰래 술을 마시던 그는 강제퇴원을 당하고 담당의사의 권유로 자발적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여 일간의 금주와 이로 인한 일시적인 회복을 경험한 뒤 퇴원을 하지만 술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1년을 술에 빠져 지냈어요. 지난해 여름, 살아서는 그 해를 넘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번째 폐쇄병동 입원을 결정했죠. 작년 8월22일 이야깁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알코올 중독자다
“이젠 술을 끊으셨어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했다는 1년 금주가 중독의 마침표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면 실망했을 것이다. ‘그를 너무 서둘러 만난 것은 아닌갗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달랐다.

“TIQ 라는 물질을 아세요? 오로지 마약중독자와 알코올중독자의 뇌 속에만 생긴다는 물질이라는군요. 한 번 생기면 절대 없어지지 않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강도로 술과 마약을 갈구하게 만든다죠. 저 역시 그것이 몸속에 있습니다.”

섬뜩한 이야기다. 알코올 중독이 그에게 안긴 상처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충동물질, TIQ 였던 것이다.

“1년을 금주한 사람이나 10년을 금주한 사람이나 공통점이 있어요. 그들이 맞서는 술에 대한 욕구의 크기에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AA(Alcoholic Anonymous :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이라는 세계적인 단체로 중독자사이의 교류를 통해 알코올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을 돕고 있다)모임에 가보면 10년 이상 금주를 하시는 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흡연욕구처럼 술에 대한 욕구도 금주기간에 반비례한다면 좋겠지만 안 그래요.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비로소 그가 스스로를 알코올중독자라고 소개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AA모임에서도 늘 서로를 그렇게 소개한단다. 그들 스스로 누구보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친구들에게 내가 알코올중독자라는 소리를 하면 술만 안 먹으면 됐지 자랑도 아닌 소릴 자꾸 하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길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이죠. 금주기간이 1년이든 10년이든 한 번 알코올중독에 걸려든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살아야 할 현실이죠.”

죽어가는 사람들, 소수의 회복
그는 지금 만 1년을 넘게 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 목표는 남은 생이다. 어쩌면 아찔할 만큼 먼 목표를 그는 담담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할’ 싸움에 대한 두려움은 발견할 수 없었다.

“술만 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코올중독은 나에게 지나온 내 삶을 한꺼번에 반성하게 하는 경험을 안겨 줬습니다. 정말 끊어야 할 것은 술이 아니라 욕심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배웠고 겸손이라는 가치를 이해하고 종교를 받들게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가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알코올중독을 겪으며 거쳤던,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는 그의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감사로 이어졌고 다시 이웃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문제는 알코올에 중독된 가장을 견딜 수 있는 가정이 별로 없다는데 있어요. 술은 중독자를 파괴하기에 앞서 가정을 먼저 파괴하니까요. 가정이 파괴된 중독자는 회복은 커녕 치료의 계기조차 얻지 못하겠죠. 그의 곁에는 술과 사회의 무관심만 남을 테니까요. 그렇게 죽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경우처럼 회복의 길에 들어서는 중독자는 극소수라고 말한다.  대부분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것을 잃은 채 아무도 모르게 죽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사회의 병, 알코올중독
“술 마시는데 돈 말고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약간의 돈만 있으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것이 술입니다.”

그는 담배의 예를 들었다. 담배를 둘러싼 사회의 온갖 경고들과 제한들은 흡연자들과 예비흡연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담배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를 갖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도 술 마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잔은 채워야 맛이고 술은 비워야 맛이면서도 알코올중독은 나와는 다른 ‘못난 인간’들이나 겪는 먼 일일 뿐이다.

“알코올중독자 하면 보통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치료를 받고 회복에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부터 종교인, 정치인, 예술가, 공무원, 나 같은 농민까지 별별 직업이 다 있어요. 사회전체가 술에 노출돼 있고 특히나 술에 무조건적으로 관대한 우리나라에서 당연한 결과겠죠.”

그는 사회 차원에서 알코올중독을 볼 것을 권했다. 우리사회가 지속하고 있는 엄청난 술의 소비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술의 위험성을 정확히 알려야 하며 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어린 학생들, 특히 사춘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알코올위험성교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사회가 술 마시는 모습만 아이들에게 가르쳤지 그 결과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중독자 치료시설이나 보호시설에 가보세요. 이삼십 대 젊은이들이 넘쳐납니다. 알코올중독자를 사회의 낙오자로만 보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지요.”

그는 자신이 내일이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알코올중독자라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한 그런 가능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잠든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보아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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