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김 교감이 원하는 학교는 어떤 학교였을까?
[기자의 눈] 김 교감이 원하는 학교는 어떤 학교였을까?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5.06.10 00:00
  • 호수 7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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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감(62)은 내년 8월이 정년이었다. 아버지 고향이 옥천읍 서대리인 그는 72년 3월10일 단양공고에 첫 부임하여, 청원 부강공고, 보은 내북중, 86년에는 안내중학교에도 있었다. 2003년 9월에 증평공고 교감으로 첫 승진해서 지난해 9월 옥천여중 교감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젊은 교사들과 메신저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하고, 정겹게 술도 자주 마시면서 교사들의 애환을 잘 들어주는 큰 형님같이 듬직한 교감이었고,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상했고, 학부모들에게는 동네 아저씨같이 소탈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런 그가 지난 6월6일 현충일 아침, 아파트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내년에 정년을 하면 한적한 곳에 가서 인삼농사나 지으며 남은여생을 보낼 거라는 그의 바람도 이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년을 얼마 앞두지 않은 그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학교는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가 하늘로 떠나면서까지 교육계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누가 오든지 간에 언제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학생들이 뛰어놀고 공부하는 학교를 꿈꿨을 것이다. 또, 교사들과 학생들, 학부모, 지역주민, 교감과 교장이 평등한 관계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되고, 어디에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든지 간에 그것을 질타하기 보다는 교육적인 토론과 따뜻한 대화로 충분히 승화시켜낼 줄 아는 학교를 꿈꿨을 것이다. 

그는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김 교감이 죽은 후, 이 사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역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어디서부터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하늘로 떠난 김 교감이 원하는 옥천여중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 더 이상 김 교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김 교감이 꿈꾸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몫만 남아 있다. 그것이 그를 진정 추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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