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환경이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환경이 된다
군서초 변순희 교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05.06.10 00:00
  • 호수 7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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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어린이 중에 어머니의 사망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 연로하신 외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어린이가 있다. 입학하는 날부터 그 분들은 교대로 외손녀를 하교시간에 맞추어 데리고 가셨다. 요즘엔 농번기라서 데리러 오시기가 만만치 않으신 것 같고, 어린이 혼자 걸어가기엔 조금 먼 감이 있어 하교시간에 차를 이용해 집으로 데려다 주고 있다.

환경 탓인지 생활과 학습면을 돕기 위해 개별지도를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아 서로에게 인내를 요한다. 오늘도 집으로 데려다 주러 갔다가 손녀를 마중 나오신 할아버지를 뵈었다. 손이 불편하신 외할아버지는 연세도 있고 병약하시어 바람이라도 조금 세게 불면 쓰러지실 것 같아 마음이 저렸다.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하시는 순간, 할아버지 얼굴에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자하셨던 아버지. 갑자기 뇌출혈로 무의식 상태가 된 어머니의 병환으로 3년 이상을 마음고생 하시다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할아버지의 그 쓸쓸하고 나약한 모습에서 살아난 것이다. 목이 메었다. 아버지 산소에라도 가서 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산소에 가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그 따스하셨던 손대신 만질 수 있는 것은 억센 잔디와 거친 흙뿐이 아닌가? 이것이 삶과 죽음의 한계였던가? 불효가 새삼 살아나니 가슴이 메어졌다.

매사에 당당하셔서 친구 분들께도 버팀목이 되셨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가까이 지내셨던 친구 분들 중 두 분도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충격을 받으시고 연이어 돌아가셨다. 천 년 만 년 누릴 것 같은 시간 앞에 마지막에는 빈 몸마저 한 줌 흙이 되어 자연환경의 일부분이 되셨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환경이다. 어린이들이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어린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대단할 것이기에 숙연해진다. 환경변화가 크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다.

나 자신도 십 여 년 전, 갑작스럽게 건강에 적신호를 받고 인정하기 어려웠던 아픈 기억이 있다. 금년 봄에는 예기치 못한 상식 밖의 일들이 연이어져 말을 잃고 멍하니 당황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런 예기치 못한 환경변화의 아픔을 겪으면서 얻은 것은 적어도 나 자신은 누구에게든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이다.

작년 10월 김천호 교육감님이 백혈병어린이에게 성금을 전달하며“나도 7년 전에 신장을 이식하였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여 교육감을 하고 있으니 굳센 마음으로 큰 꿈을 이루기 바란다.”라며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감동의 덕담을 남기신 일이 생각난다.

우리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해 주길 기대한다. 억압만큼 반동도 비례함을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돌이 미처 올라오지 못한 사람에게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될 수 있음에 조심하고, 다른 사람의 공든 탑 앞에 겸허할 수 있고, 내 인격만큼 상대방 인격도 소중히 하고, 무리하게 밑돌을 빼기에 앞서 순리를 생각하고, 때론 들리지 않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절망의 환경을 희망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로운 어린이가 되어 꿈을 이루길 바란다.

인격적인 상황에선 모든 것을 다 내 놓아도 흐뭇할 수 있지만 자존심이 무시된 환경에선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존재를 부정하는 상처가 됨도 알아야 한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세 치 안 되는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새기며, 잔인한 말 한 마디가 삶을 파괴한다는 말은 소름이 끼칠만큼 말조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환경이 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작은 배려라도 앞세울 때 서로에게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인생은 부메랑’이란 말처럼 나의 모든 행위의 결과는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는 단순한 진리가 올바로 살라는 각성을 촉구함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학교 운동장 둘레에 곱게 핀 꽃들과 푸른 느티나무 잎들이 뛰어노는 어린이들과 아주 잘 어울리며 어린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어려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저 운동장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꿈나무들이 어떤 거센 바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피는 꽃이 되길 바라며, 내게 불청객으로 찾아와 건강과 마음에 충격을 준 두 사건을 보듬어 준 도종환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며 맺는다.

bsh04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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