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에게 보내는 격려
오에 겐자부로에게 보내는 격려
이명재(청성 소서교회 목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05.06.10 00:00
  • 호수 7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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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성소서교회 이명재 목사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서 국제문학포름이 열렸다. 우리나라 문인들뿐만 아니라 각국의 저명한 문학인들이 참석해서 세인들의 주목을 끈 행사였다. 20여명의 외국 참석자들 중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단연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쓴 소설의 높은 문학성과 그로 인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또 70년대 군사정부 시절 정권에 핍박받은 김지하 시인 구명을 위해 단식투쟁에 참가했고, 열강의 베트남 침략을 반대하는 운동에 동참했던 사실이 아직 나의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최근 일본의 오만으로 껄끄러워진 한일관계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에 기인한 바가 컸다. 지금의 일본은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언제부턴가 일본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 우경화의 흐름에 오에는 이론과 행동으로 반대하고 있어 ‘실천하는 일본 지성’으로 불리고 있다.

문학포름이 열리기 전,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일본의 우경화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었다. 하나는 평화헌법 개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이다. 이러한 일본의 우경화는 지리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우리에게 강한 우려를 안겨주는 것이다.

특히 독도 영유권 문제와 교과서 왜곡 사건은 두 나라간 현재와 과거의 영토에 대한 문제여서 그 심각성의 도가 더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의 일원이었다. 이 추축국이 연합군에 패배해서 막대한 피해를 남긴 채 대전이 막을 내렸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전범국가 일본은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국제 조치로서 독일처럼 분단되는 대신,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는 평화헌법을 수용했다.

따라서 이 평화헌법은 자기들 마음대로 개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세계 대전의 전범국가로서의 죄과로 수용한 평화헌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법 개정에는 국제적 협의가 필수적임에도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들을 우경화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방적 분위기 속에서도 오에는 현재 ‘9조의 모임’을 만들어 법 개정 저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평화주의 국가로 갱생하고자 만든 일본의 헌법 제9조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다. 그는 일본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통해 “일본 정부와 의회가 헌법을 개정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립되고 의지할 것은 미일군사동맹의 강화밖에 없다”며 법 개정 저지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행동을 지켜보면서, 나는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분석한 책인 `국화와 칼'을 떠올리게 된다. 베네딕트는 이 책에서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는 것을 지적하며, 이것을 통해서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고자 했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해당 부서 각료가 변명하고 각료들이 참배할 때는 총리가 반성하는 척하는 일련의 모습에서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른 그들의 전형적인 이중성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인근 국가에서 왈가왈부 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침략을 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것이 어떻게 내정간섭인가!

그 신사에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2차대전의 전범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이러한 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전범들을 전쟁의 순국자로 애도하고 찬미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2차대전 희생자들에 대한 결례이고 정의와 진리에 대한 모독에 다름 아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역사를 후퇴시키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군국주의의 회귀에 대한 쇄국적 멘탈리티이다. 군국주의는 인류의 평화를 해치는 이데올로기임이 확인된 지도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군국주의에로의 회귀를 바라는 일본 국민들의 염원 속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총리로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극우주의자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동경도지사로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볼 때 일본 장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고군분투는 돋보인다. 그가 일본의 막강한 우경화 세력에 맞서 싸워서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고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비주류의 편에 서서 보여주는 그의 실천적인 노력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오에와 같은 일본 내 양심세력들이 존재함을 우리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경제력에 있어서는 고도의 발전을 구가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시민혁명의 경험을 갖지 못한 일본 국민이다.

그것은 분명 역사 발전에서 하나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군국주의 우경화의 유혹에 쉽게 도취되는 많은 국민들 속에, 양심을 지키며 우경화의 흐름을 저지하고자 하는 세력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조금은 안도하게 한다.

이 양심 세력이 더 큰 힘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양심 세력의 연대와 후원이 요청된다. 우리도 일본의 우경화에 감정적으로만 임할 것이 아니라 그들 우경화 세력과  반대쪽에 있는 양심 세력을 구분해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흔히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그것 이상을 요구할 때가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행동을 통해서 사회의 요구에 성실히 응답해온 작가이다.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 정의 진리와 어우러진 인류 평화의 수호임을 믿으며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에게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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