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지역특화작목 사례발표
'99 지역특화작목 사례발표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9.12.04 00:00
  • 호수 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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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주 <청산면 지전리>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산에서 배농사를 짓고 있는 최춘주입니다. 저는 30년간 배농사에 전념해 왔습니다. 40∼50년된 늙은 배나무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96년 1,500평의 밭에 신고를 주종으로 수분수로 감천, 추황배 1,350주를 심었습니다. 나무가 어느정도 성장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밀식형으로 심었기에 Y자수형을 잡자면 파이프시설이 필수적이고 여기에 필요한 돈이 문제였습니다.

자식들 둘을 대학에 보내다 보니 생활은 뻔한게 아닙니까?
그러던중 반상회보와 옥천신문을 통하여 농업기술센터에서 특수작물 시범사업신청을 받는다고 안내문을 보고 서둘러 접수한 결과 뜻밖에도 제가 선정이 된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의욕에 그분들도 어쩔수 없었나 봅니다. 금년 5월 화사한 배꽃이 지고 배가 포도알만큼 했을 때 보조 500만원과 자부담을 포함해서 1,500평에 파이프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곧바로 가지 유인작업과 접과를 실시했고 봉지씌우기를 실시했습니다.

40∼50년된 배나무밭 1,000평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모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봉지씌우는 데만 40명이 듭니다. 그러나 금년도 Y자수형재배밭 1,500평은 15명이 거뜬히 해냈습니다.

차가 골마다 들어가기 때문에 소독이며 수확까지 역시 참으로 편리했습니다. Y자수형재배 하기전엔 천덕꾸러기 배밭이 모든걸 갖추고 보니 애정이 가고 애착이 가고 이는 돈으로도 연상이 되더군요.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기술센터에 토양감정도 의뢰하여 작물에 필요한 만큼의 퇴비와 비료도 시비하고 소독도 사전에 미리 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주인의 정성을 가륵히 여긴 배나무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태풍도 피해간다는 청산에 강한 바람으로 낙과가 많이 되었습니다. 고목밭에는 30% 낙과가, Y자 배밭은 20%의 낙과율을 나타냈습니다. 면에 보고되어 현지답사 과정을 마치고 한참 뒤 통장에 입금된 금액은 고작 30,380원이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재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보험제도라도 마련하는 뒷받침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이때만해도 TV에서는 배값이 금값이라고 보도할 때 입니다. 금년 햇배 출하전까지 배값이 금값이 됐던 원인을 제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 작년도 배 작황이 나빠서 그런게 아닙니다.

그동안 줄기차게 심어왔던 배나무들이 수확기를 맞아 물량이 많다 보니 매년 사과보다 우위였던 배값이 폭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장하면 무엇하나 하고 전부 시장에 헐값에 내다 팔았습니다.

하나같이 농민의 똑같은 심정은 모든 물건이 값이 오를 때면 움켜쥐고 버팁니다. 그러나 값이 내려가는 낌새만 있으면 너도 나도 내다 팔기에 급급합니다.

저장배는 없지, 여름 수요기는 닥쳤지, 값이 오르는 것은 기정 사실아닙니까. 작년도에 배짱 좋게 저장한 분들은 3년 농사 거뜬히 지었다고 실토합니다.

금년도 추석 어떠 했습니까? 추석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공판장이 열린날 그날따라 비가 왔습니다. 청주원협공판장에 1톤트럭 에 배를 가득 싣고 도착한 시간이 밤 9시.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선 과일차들로 발 디딜틈도 없었습니다.

순서 기다리길 밤 12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더이상 입고시킬 자리가 없으니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통 사정을 해봐도 막무가내였고, 평상시 반겨주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안면몰수, 30분간을 실갱이를 하다가 밤 12시30분경 오던 길로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날따라 웬 비는 그렇게 내리던지. 수확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옆에 탄 마누라에게 가장의 설 자리는 정녕 없었습니다. 지금도 가게 앞 한켠에 `듣기보다 쌉니다' 글씨를 써놓고 팔아보지만 저장고 없이 간이창고에 수북히 쌓여 있는 배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곧이어 추위도 닥칠텐데.

TV, 매스컴을 접한 분들은 저에게 그럽니다. "금년 배값이 좋아 재미봤겠네" 하면은 "네, 잘했습니다. 어디 땅 나온 데 없어요?"하고 대답은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누가 채워주겠습니까? 고민하는 저에게 누군가가 제의를 해왔습니다. "우리 은행 한 번 털어보자"

묵묵히 한참을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나무는 못타거든요. 농사꾼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다. 일한 만큼의 대가만 주어지면 족합니다. 어느 지역이 망해야 우리지역 과일값이 좋아진다는 요행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을 다시 기약해 봅니다만 내년도엔 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추석이 10여일 더 빠르기 때문에 과일의 대과성, 당도, 색깔 문제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이점에 고려하여 교육과 지도를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금년에도 잘익은 성숙된 과일은 추석 이후에나 맛볼 수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알것입니다. 오뉴월 하루빛의 의미를! 과일비대기엔 하루가 다르게 과일이 굵어지고 살이 붙고 당도가 증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추석때가 배 수요가 제일 많을 때인데 그 이후의 물량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수요가 많은 시절 값이 좋은 때에 적시적소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과수농가라면 농어촌 주택개량 사업보다 더 우선적으로 저장고 하나쯤은 꼭 갖추어야 될 사항입니다.

그리고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이득이 되는 많은 직거래 장터를 개설하고 도로에 접한 농원에는 간이판매장 설치도 권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눈을 돌려 배려해 주신다면 맘놓고 안정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가소득원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농촌에 남아 있는 농민도 살기 힘든 판에 농촌이 도피처입니까? 귀향자에게 정책자금까지 주며 이주하여 현재 얼마나 정착하여 적응하고 있습니까? 또 한가지 공공근로사업 말입니다.

바쁜 농사철을 비껴서 사업을 하면 좋겠는데 농사철에 인력이 그곳으로 모이다 보니 노동력 구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또한 이분들은 이제 힘든 농사일은 기피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어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난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지나가는 차창가로 보이는 농촌의 한가로운 모습이 한폭의 그림으로 보지 않고, 정녕 그속에서 열심히 일하며 하늘을 걱정하고, 홍수를 걱정하고, 가뭄을 걱정하고, 판로를 걱정하는 농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포용력을 가지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농민의 고충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내농사를 짓는다는 일념으로 각 농가에 기술을 보급시켜 주시고, 우리 농민은 축적된 기술 위에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한다면 이 자리를 지켜봐 주시는 여러분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이 마침 대학수능일입니다. 늘 불안하고 초조하니 조급한 마음으로 가슴조이며 살아가는 고3 수험생과 같은 생활의 연속인 우리 농민들이 편안히 농사지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저의 넋두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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