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방위의 실체를 밝힌다
범방위의 실체를 밝힌다
  • 오한흥 ohhh@okinews.com
  • 승인 1999.11.27 00:00
  • 호수 4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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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기능은 공익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국민이 검찰에 위임한 힘은 막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의 막강한 힘이 선량한 다수 주민들에게 공포로 다가선다면 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최근 검찰 유관단체인 범죄예방자원봉사위원회(이하 범방위)를 둘러싼 문제는 결국 그 뿌리가 검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보복적 조처 우려 공직사회 긴장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의 주민들은 검찰과 관련된 문제점을 들추는 일 자체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검찰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긴장감마저 나돌고 있다는 소문이다. 검찰로부터 튈 불똥이 지금 당장은 비켜간다 해도 시간을 두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무원 ㄱ아무개씨는 "옥천신문에 보도된 검찰관련 기사를 보고 속이 후련했다"면서도 "몇몇이 모이면 이후 검찰에서 지역전반에 걸쳐 보복적 조처를 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째서 설명하기도 힘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검찰의 행태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어릴적 혼자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저만치 논 가운데 희뿌연한 물체가 상상에 의해 귀신도 되고, 이런 저런 무서움으로 다가선 것처럼 순진한 주민들에겐 친근해야 할 검찰이 허깨비로 다가선 것이다. 이런 허깨비를 실체로 착각하게 만든 책임은 비단 검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게는 사회구조적인 측면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권력에 기생하려한 일부 몰지각한 지역유지(?)들도 한몫을 담당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않다.

▲검찰유관단체 범방위의 실체
범방위는 전국적인 검찰유관조직으로 지난 96년 6월 제정된 법무부 훈령에 근거, 기존의 갱생보호위원회 등을 정리. 통합해 발족됐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 1항(결격사유)을 적용할 정도로 엄격한 절차를 밟아 법무부장관이 위촉하는 범방위원은 명칭 그대로 범죄예방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주로 한다. 범방위 운용의 틀인 기본규정은 부분적으로 포괄적이긴 하지만 이 규정만 잘 지켜도 범방위 운용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옥천지역의 경우 범방위 운용실태는 틀도, 내용도 엉망이다. 이미 본보 보도(11월6일치 `검찰유관단체 이대로 좋은가'/11월13일치 `범방위 예산 대부분 검찰 뒷치닥거리'/11월20일치 `검찰선도위원 청소년선도 문제있다')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검찰과 범방위의 유착의혹마저 제기되며 검찰주관 행사시 예산지원을 하는 등 상식에 어긋난 운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모임이나 구성원끼리의 유대는 기본에 속한다. 그러나 범방위는 이미 해촉된 위원이 통보를 받지 못해 이같은 사실을 모르는 경우마저 있다. 심지어 검찰직원들의 경우엔 애·경사는 물론 전별금까지 꼬박 꼬박 챙겨주면서 회원들의 경우엔 연락조차 해주지 않는 등 구성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낸 회비로 유급직 여직원까지 두고 있지만 회원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직원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여직원 역시 급료만 범방위에서 부담할 뿐 실제로 하는 일은 검찰 뒷치닥거리만 하는 셈이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유급직 여직원을 쓰고있는 범방위가 이처럼 기본적인 업무마저 마비된 채 변칙적으로 운영돼온 것이다.

▲웃지못할 해프닝 이것저것
범방위 행사는 철저하게 검찰 위주로 짜여진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범방위 사이의 해프닝은 `정말 이 정도일까'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본보 보도 이후 검찰이나 범방위 관계자는 전임자와 관련된 이미 지난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일부 범방위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 7월 중순께 석동현 지청장이 부임하면서 폭탄주(맥주와 양주를 혼합한 술)는 사라졌지만 검찰행사시 예산지원이나 낭비적인 회식 등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 범방위원은 "석 지청장이 참석했던 한 회식자리에선 지청장이 범방위원 명단을 준비해 일일히 참석여부를 확인했다"며 "특정직종 종사자들의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등의 발언은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문제는 지청장의 이런 발언들에 대해 일부 범방위원들의 반응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는데 있다. 그러나 범방위원들의 반응이 지나치다고만 나무랄 수 없는 것이 그동안 검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온 그릇된 인식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ㄱ아무개 지청장 시절, 범방위 정기총회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후 5시 읍내 한 식당에서 총회를 열어 아무개 지청장의 도착시간에 맞춰 5시30분께 마칠 예정이었다는 것. 그런데 이날 5시30분에 참석할 예정이던 아무개 지청장이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자 한 임원이 나서 총회자료를 훑어보던 회원들에게 `지청장님이 도착하셨으니 빨리 덮으라'며 이날 총회를 흐지부지 마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는 범방위원들이 유독 힘들었던 해로 기억하고 있다. 한 위원은 지난해 검찰에서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유난히 검찰직원들의 옥천방문이 잦았다는 것. 이들이 힘들었던 이유는 행사가 끝나면 으레 만들어지는 술판 때문. 오죽하면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은 고사하고 `아빠 안심하고 집에보내기 운동'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이외에도 범방위 주변에는 검찰 직원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널려있다. "사적인 술자리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막내 자식뻘도 안되는 새파란 검사 앞에서 영감님 영감님하며 폭탄주를 마시고 술잔을 흔드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라는 얘기 등.

▲"검찰 직원과 술마셨다" 자랑
"도대체 내돈 써가며 무슨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 범방위원의 표현처럼 범방위 내부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한 두해 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범방위가 현재까지 굴러올 수 있었던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 주민은 "검찰직원 특히 검사하고 술이라도 마시면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않다.

막강한 검찰력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일부 몰지각한 지역유지들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장면이다. 심지어 어떤 범방위원은 회비를 보험금에 빗대기도 한다. 범방위원중에는 사업상 검찰을 방패막이로 생각하고 기회만 닿으면 앞장서 판(?)을 벌이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범방위원중에는 여차하면 검찰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할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다수가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검찰의 전근대적인 권위를 바탕으로 한 막강한 힘 그리고 이러한 힘에 의존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지역유지들의 이해가 맞물려 떨어져 범방위의 오늘이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범방위 관계 다시 정립해야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로 전체가 썩는다는 것은 반대로 전체가 깨끗한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범방위도 전체 위원 모두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 청소년 선도을 비롯해 범죄예방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위원들이 있다. 이들의 이같은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범방위는 잘못을 돌아보는데 결코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이번 기회에 범방위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하는 현실과 이번에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검찰과 범방위 관련 사건이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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