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54] 청성면 귀곡리 지령마을
신마을탐방 [154] 청성면 귀곡리 지령마을
선생님, 대보름잔치, 서낭고개 옛추억 머릿속에 선명한데...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01.14 00:00
  • 호수 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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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평, 안티와 함께 대안리를 이루는 한 축 귀곡리는 지령, 상·하귀곡, 잿마, 소목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지령은 귀곡의 다섯 자연마을 중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모두 14가구가 주민으로 등록돼 있다. 그러나 행정구역상으로는 이 14가구의 세대수도 지령을 가로지르는 마을하천에 의해 귀곡지령과 마장지령으로 반씩 나뉘니 엄격히 ‘귀곡리의 지령마을’을 따진다면 가구 수는 다시 절반으로 줄어든다. 허나 행정구역 상 두개로 나뉜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마음에 분단(?)이 없는 이상 지령은 두 개로 나뉘든, 백 개로 나뉘든 지령 땅의 주인들에게는 언제나 하나의 ‘지령’일 뿐이다. 마장 땅과 귀곡 땅을 지령에서 구별짓는 것이 무모한 일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과연 ‘지령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의 동질성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시간의 수레바퀴를 60년쯤 뒤로 돌려보자.

▲ 기자에게 마을의 역사를 풀어놓는 육평수씨. 육씨는 육동일 청성면장의 부친이다.

◆야학선생 김용구
해방의 동이 트기 전, 아직은 식민지의 설움을 면치 못하던 시절이다. 이종순(81)씨도 주월응(84)씨도 할머니가 아닌,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새색시다. 지령마을 토담 길 한 모퉁이에서 구수한 장단이 흐른다. 남자 목소리…. 소리를 따라가 보니 뚜렷한 이목구비 홍안의 마을청년 김용구씨가 주인공이다.

'장꽝(장독)앞에 접시꽃은 덕실이댁 꽃이더라. 허리 질쑥 담배꽃은 무니댁의 꽃이어라. 장꽝앞의 만드레(민들레)꽃은 서당골댁 꽃일러라.'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한창 봄나물 다듬기에 일손 바쁜 새댁들에게 김씨가 불러주는 노래다. 그들에게 꽃 이름을 하나씩 지어주는 용구씨의 구성진 가락에 안남에서 지령으로 시집온 새색시들의 볼이 알 듯 모를 듯 붉다.

“어이∼ 용구! 이리와 우리도 좀 보자고!”

저쪽 어귀에서 한 무리 농군들이 용구씨를 부르니 장단도 끝내야 될 시간이다.

“아주머니들, 야학 나오는 거 잊지 마세요!”

야학을 약속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용구씨가 자리를 뜨니, 그제서야 새댁들도 신이 났다. 이제부터 새색시들의 이름은 무니댁, 덜실이댁이 아니라 접시꽃이고, 담배꽃이다. 서로, 새로 얻은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거니 웃음이 그칠 줄 모른다.

“그때 참 열심히 공부했어요. 밤이면 젊은 사람들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사랑방에서 모임을 가지고 공부를 했거든요.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또 여자들끼리 모여 공부를 하고 마을에서 문맹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었죠.”

당시 나이가 어려 야학에 참여하지는 못했다는 육평수(77)씨는 그 열기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김용구씨란 분이 야학을 이끌었어요. 마을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그 시절 대전공업고등학교까지 마친 엘리트였죠. 마을사람들 모두 그를 좋아했고, 그도 마을을 아꼈어요. 해방 후 가족이 모두 마을을 떠나 대전으로 갔어요. 경찰공무원으로 일하다 가셨다는데 살아계셨으면 아흔 쯤 되셨을 꺼요.”

새댁들에게 붙여 준 꽃 이름 노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종순 할머니는 너무도 재미있던 시절로 그때를 기억했다.

“야학도 야학이지만, 당시 또래 젊은 사람들 참 재미나게 놀았지. 요즘사람들도 그때처럼 재미있지는 못할꺼야. 김용구씨와 어울려 공부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어. 그이가 영리한데다가 미남이고, 마음이 참 깊어 마을에서 누구하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어.”

   
▲ 지령마을 노인회 유기용 회장과 육평수씨가 나란히 마을 골목길을 거닐고 있다.

◆‘떠올라라 대보름 만월이여!’
지령의 겨울밤, 마을 장정들이 깊숙한 집 사랑채에 모여 낮은 목소리를 나누고 있다.

“다들 조심 혀. 망월이놀이(정월대보름 행사) 준비하는 것 눈에 띄면 순사고 면서기고 우리를 가만히 안둘꺼니까. 눈을 피해가면서 준비하고, 수상쩍다 싶으면 내빼야혀.”

“아무렴, 마을에 놋그릇하나 안 남았잖아. 왜놈들이 전쟁에서 밀린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공출도 더 악독해 지는 겨. 징이며 꽹가리며 놈들 눈에 띄는 날엔 바로 빼앗기는 겨. 그것들 빼앗기고 망월이 잔치 흥이 안 나니까 각별히 잘 숨기자고.”

언제부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령은 한 번도 대보름 망월이 잔치를 거른 적이 없다.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한 시기, 조선인들 몇 사람만 모여도 정신병적인 반응을 보이던 시기였기에 대보름 달맞이 준비는 더욱 힘들고 어려웠다. 어려울수록 더더욱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마을 노장들이 책력을 따져 정확히 대보름 둥근달이 두둥실 떠오른 시간, 일제의 앞잡이들을 피해 자신의 집에 숨죽이던 사람들은 밤 그림자처럼 그렇게 마을광장으로 하나 둘 모였다. 숨죽이는 침묵이 짚가리처럼 쌓아올린 달집이 타 들어가는 소리에 하나 둘 깨진다.

‘탁탁탁.’

장작이 타는 소리는 어느새 농민의 억센 손으로 꽉 움켜진 풍물소리로 변하고, 식민지의 공포와 두려움도 그 불길에 다 태워버린다.

   
▲ 청산향교 전교인 신건중씨도 지령마을에 산다.

“망월이잔치 하다가 순사라도 나타날라 치면 여기저기 순식간에 숨었어요. 담배창고 지붕에도 곧 잘 숨었었지.”

지령 노인회 유기용(78) 회장의 회고에 육평수씨가 거든다.

“해방 후에 대보름 잔치를 한 해 거른 적이 있었어요. 그해 유독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겼고, 그 후로는 더더욱 망월이 놀이를 거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게 됐지.”
“대부분 노인들인데 준비가 버겁지 않으세요?”
“일이라고 생각 안해요. 당연히 하는 전통이고, 마을사람 누구하나 빠짐없이 나서니까 힘들지 않아요.”

마을에서 가장 젊은 유홍종(64)씨다. 그의 아내 배순자(58)씨가 남편의 말 가운데 불쑥 끼어든다.

“우리 마을 대보름 잔치 때 아들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100%예요!”
“내가 지령에서는 가장 젊은 축이니, 내 뒤로 누가 이 마을에 들어와 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지령에 사람이 사는 한 대보름 행사도 살아 있을꺼란 생각이 드네요.”

▲ 아스팔트로 확포장되어 옛 모습을 잃어보린 서낭고개,.

◆서낭고개, 추억의 돌탑
새벽 6시, 마을 앞 공터가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소란하다. 청성으로 또는 보은으로 걸어서 등교길에 나서는 아이들이 새벽을 깨우고 있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능월에 초등학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수십 년을 변함없던 지령의 아침 풍경이다.

지령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둘 또는 셋씩 서낭고개를 넘는다. 1미터 폭이나 될까? 좁은 고갯길을 따라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 사이 지령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돌탑이 눈에 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막손으로 제 마음만큼이나 이쁜 돌을 골라 정성껏 돌탑에 쌓고 꾸뻑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수 년 전 이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큰 차들이 지나다닐 만큼 넓어지기까지 작은 고갯길을 넘던 수많은 조막손들 중에는 오늘날 청성면장으로 근무하게 된 육동일 어린이도 있었다.

“능월초등학교로 넘어 다니던 서낭고개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서낭고개로 난 소로 길을 지날 때 마다 서낭당 돌탑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쌓곤 했어요. 또 그 길가에 팽나무, 지금은 죽고 없지만 노인회관 위쪽에 있던 은행나무고목, 멱 감고 놀던 마을하천...고향마을하면 늘 떠오르는 풍경이에요.”

대안리에서 70년만에 배출한 면장이라는 환호를 받으며 지난 1일 취임한 육 면장은 서낭당 돌탑과 은행나무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길이 넓어지기 전까지는 1m 조금 넘는 좁은 길이었어요. 그 길로 장보러 다니고 학교 다니고 이 마을 사람들 누구하나 서낭고개를 넘지 않은 사람은 없죠. 서낭당 돌탑은 얼마 전에 그냥 없어졌어요.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서낭당 돌탑을 떠올립니다.”

김형자(58)씨 역시 서낭당 돌탑 자리를 지나칠 때 마다 흙길을 지나던 그때를 떠올린다. 세월에 사람이 묻혀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아쉬워 말자. 젊은 야학선생이 이끌었던 시절은 다시올 수 있으니까….

▲ 서낭고개에서 내려다본 대안뜰의 전경

그러나 서낭당 돌탑이 없어진 것은 아쉽다. 그래서 남아있는 대보름잔치는 소중하다.  만월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지령마을의 망월놀이 불꽃이 다시 그 시절 젊은 숨결을 마을에 이끌어 줄 것을 올해 대보름에는 기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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