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51] 청성면 망월리
신마을탐방 [151] 청성면 망월리
느티나무가 지키는 청풍명월의 장수마을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4.12.10 00:00
  • 호수 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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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의 기념사진 한 장 '찰칵'. 가운데 친할머니 품에 안겨있는 꼬마 수진(4)이는 회관의 재롱둥이로 할머니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초행길에 찾기 만만한 마을이 그리 흔치는 않겠지만 청성 망월리 또한 길을 묻지 않고 한 번에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 청성면사무소에서 능월 쪽으로 길을 잡아 차를 몬지 10여분이 지났을까 19번 국도를 달리던 차는 벌써 옥천군과 보은군의 경계 삼승면 삼거리에서 갈 곳을 잃고 멈춘다. 옥천군의 끝까지 가면 나온다는 말에 무작정 내달린 길이 벌써 보은 삼승면이라니. 잠시 낭패감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길 한쪽에 ‘청산농협 능월지소’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보은은 아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능월지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지소앞 길모퉁이에서 ‘망월리’를 만났다.

▲ 왼쪽부터 노완수, 윤정석, 유태춘, 박영옥씨. 땅콩껍질을 가다말고 한낮의 담소를 나눈다.

'우리 마을은 본디 청산면 두릉리라고 불렸는데...뒤로는 대왕산을 등에 지고 앞으로는 금적산을 바라보며 푸른 산 맑은 물 넓은 들판에 대대로 풍족하게 살아온 청풍명월의 고장이다.’

93년 8월15일 광복절을 즈음해 세워진 망월리 자랑비는 망월리에 자랑인 두 그루 느티나무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24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는 이 마을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능월지소와 보은 원남중학교 사이 길을 따라 잠시 걸음을 옮기니 곧 망월리의 수호목 느티나무 두 그루가 눈 앞에 펼쳐진다. 겨울이라 마른가지만 남았지만 한여름 두 그루 느티나무가 연출했을 장관이 눈에 선하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아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수 백 년의 더위를 피해왔으리라.

   
▲ 망월리 이성구씨가 마을 보호수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을의 수호신 느티나무 두 그루
“일제 말기였어. 왜놈들이 배를 만든다고 이 나무를 베어가려 했지. 그러고 얼마 안돼 해방이 됐어. 해방이 나무를 살렸지.”

이성구(81)노인이다. 운동 삼아 마을 한 바퀴 돌러 나온 이씨 눈에 마을 보호수 앞에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이방인이 관심을 끈 모양이다.

“마을보호수까지 베려 했다니, 참 지독한 놈들이네요.”
“지독하다 뿐이겠어? 식민지때 이 마을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줄까. 그땐 지금처럼 논에 비료를 주는 일도 없었으니 나락이라고 걷어봐야 쥐꼬리였어. 혼자 먹기에도 힘든 것을 왜놈들이 공출로 다 걷어가니 배겨낼 수가 없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수확한 나락을 숨기려고 집집마다 한쪽 벽에 다시 가짜 벽을 만들어서 그 틈에 나락을 숨겼어. 그렇게 버텼지. 그때 굶는 일은 지금 밥 먹는 일 만큼 흔한 일이었어.”

방안에 다시 벽을 쌓아 곡식을 숨겨 연명했다니 좀처럼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한국전쟁 때 마을에 큰 피해는 없었다는 이야기, 김정배라는 젊은 농민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보도연맹사건으로 무고한 죽음을 당한 이야기 등을 해준 이씨는 다시 갈 길을 갔다.

▲ 20년 역사의 망월구판장. 삼승면에 할인마트가 하나 둘씩 생기면서부터 장사가 시원찮다고.

◆“마을 인심덕에 먹고 살아요.”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늘 그렇듯이 텅 빈 것 같다. 망월리가 품고 있는 마루뜰에 내년에도 희망의 나락이 가득하길 바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뜰만 빈 것이 아니라 50가구 이상이 살고 있는 아랫말도, 10가구가 사는 윗말도, 7가구가 사는 중방에도 인기척이 드물다. 한때 담배농사로 이름을 날렸던 망월리에 더 이상 담배농가는 없다. 올해까지 담배를 했던 두 농가도 내년부터는 다른 작물로 전환한다고.

현재 스무 농가 정도가 인삼농사를 하고 있고, 복숭아, 사과, 배를 재배하는 농가도 많다. 벼농사는 마을 앞 마루뜰에서 대부분의 농가가 다른 작물과 병작하고 있다. 넓은 골목과 집집마다 품고 있는 넓은 마당이 인상적인 마을 골목길을 지나는 중 저쪽에서 도란도란 이야기소리가 들렸다.

“이웃 화성리에서 태어나 망월리로 시집왔어요. 이제 늙어서 농사는 못 짓지만 동네인심이 좋아 인심으로 살고 있어요.”

노완수(42)씨 집 앞 골목에서 땅콩껍질을 까던 유태춘(80)할머니가 마을자랑을 하고 함께 있던 육정석(62)씨가 맞장구다.

“얼마나 살기 좋아졌어요. 보리밥도 못 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이야 뭐 모자란 것이 있어요? 쌀은 먹잖아요.”

“그래도 옛날 없이 살 때 꽹가리 치고 그네 뛰던 즐거운 기억은 많이 흐려졌어요. 그런 건 아쉽죠.”

마을에서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이면 마을입구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온 주민이 모여 그네놀이를 했다.

단오 날 그네놀이, 새해 첫날이면 희재에서 했던 해맞이, 마을입구 서낭당에서 하던 동신제 등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견디게 해주었던 옛 마을의 기억들은 아직 망월리 노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매월 젊은이들 모여 마을현안 이야기해
떠들썩한 소리에 땅콩농사의 주인공 노완수씨와 아내 박영옥(39)씨가 커피를 타 집앞으로 나왔다. 노씨는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민이다.

“다른 마을에 비해서 망월리는 젊은 사람이 많은 편이에요. 40대가 중심이 돼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를 하고 마을의 현안과 서로의 소식을 나누니까요. 마을에 일이 있으면 힘을 합치는데 부족함이 없어요.”

노씨는 사과와 복숭아 그리고 벼농사를 하고 있다. 젊은 농민의 마음속에 담긴 희망이 궁금했다.

“시골이 좋아요. 도시에서 직장생활도 해 봤지만 시골이 좋아 농사짓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 교육시키고 생활하기 부족한 것이 농사예요. 요즘은 농기계를 하나 구입하려고 해도 보조금이 없어 빚을 많이 얻어야 하고...벼농사 전망이 어둡다보니 과수로 전환을 하고 있지만 또 마땅히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턱없이 부족한 살림살이지만 그래도 농촌이 좋네요.”

이야기를 듣던 유 할머니가 한마디 한다.

“다 나가. 그럼 내가 농사 다 지을껴.”

할머니 호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다시 마을입구에 이르니 이재규 이장을 비롯해 군 산림과 공무원과 몇 사람이 마을 보호수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몇 년 전에 벼락을 맞았는데 그 이후로 나무가 건강하지 못해요. 일단 주민불편이 없는 범위에서 뿌리주위 아스콘을 걷어 내고 양분을 공급하려고요.”

자세히 보니 목피가 성치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느티나무를 떠나 마을을 내려오려는데 한 할머니가 소매를 잡는다.

“버스정류장까지 나 좀 태우고 가. 동네에 버스가 안 들어와 내 걸음으로 한 시간은 걸어 나가야 혀. 언제나 버스가 다니려나.”

청성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큰 마을 망월리. 오랜 세월을 버텨온 망월리의 느티나무처럼 마을도 언제까지나 옥천의 한쪽 끝을 지키는 경계로 늘 윤택하고 건강하기를 빌며 마을을 내려왔다.

"우리나라 쌀시장을 지켜야 합니다"

   
▲ 망월리 이재규 이장

이재규 이장

“쌀농사 짓는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눈앞에 닥친 추곡수매제도 폐지와 쌀시장 개방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요. 농민의 힘만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실망감이 팽배해 있어요. 우리지역만 해도 쌀을 대신할 수 있는 마땅한 작물이 없는 상황 이다보니 앞으로 방치돼 황폐화되는 농지는 계속 증가할 것 같습니다.”

쌀전업농연합회 이 회장은 추곡수매제도 폐지를 앞둔 농민의 심경을 전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 정부가 미국·중국·호주 등 9개국과의 ‘쌀관세화 유예 연장 협상’을 진행하며 공공연히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의무수입물량 증가와 소비자시판허용 움직임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쌀 의무수입물량이 확대되고 그 가운데 상당부분이 소매로 풀릴 것 같다는 것이 현재까지 유력한 전망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같이 재래식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도저히 경쟁이 되질 않아요. 현재의 생산비로 외국쌀과 대응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사정이니까요. 그런 상황을 전제로 논 농업 소득보전 직불제가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다른 방법으로 생산비를 낮출 수가 없으니까요. 최근 정부에서 제시하는 직불제도 정부가 목표가격으로 제시한 17만원대의 가격이 3년후에 얼마나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이씨는 쌀농사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농협의 개혁을 꼽았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조합원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충북만 해도 쌀 전문 농협이 생겨나고 있거든요. 옥천에도 이런 움직임이 전달 돼 위기의 쌀농사를 지키는 방패막이 구실을 해야 합니다. 현재의 문어발식 사업으로는 희망이 없어요. 군에서도 과수농사를 위한 대안마련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쌀시장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해요.”

쌀을 포기하면 농업이 끝난다는 이야기는 모든 농민의 일치된 목소리다. 이씨도 같은 이야기를 힘주어 말했다.

“벼농사가 가진 무한한 생명의 가능성들이 쌀시장 포기로 인해 결국 우리에게 재앙으로 돌아 올껍니다. 그 엄청난 비용을 우리는 좀 더 싼 쌀을 먹는 대가로 지불해야 할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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