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풍경 담아낸 저는 부자''
“많은 풍경 담아낸 저는 부자''
[내고향 옥천] 옥천읍 문정리 출신 사진작가 조영상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9.17 00:00
  • 호수 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영상씨

그는 사물을 그냥 바라보지 않았다. 이름지어진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보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선입견을 걷어내고 ‘태초의 눈’으로 보려 했다. 눈의 기능을 확대한 카메라를 들고, 구도와 초점, 노출의 3대 요소를 적절히 활용해 그는 사물에 담겨진 빛을 읽어낼 줄 알았다. 여러 각도에서 가까이 또는 멀리 다가가면서 빛의 언어를 해독해냈다.

고향 옥천에서 연 세 번째 개인전 ‘연꽃 피고, 지다’에서는 그의 사진에 대한 30년 결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단순하고 명쾌한 제목에서 그는 작품으로 인생을 담으려 했다. 연꽃의 색다른 모습에서 그는 유년, 청춘과 중년, 황혼에 이르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려 했다.

‘과연 사진으로 저런 영상이 나올 수 있을까?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사진은 독특하다. 아마 그의 모토처럼 ‘연꽃 같지 않은 연꽃’을 찍으려 무던히 애를 쓴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마치 추상화처럼 사진은 회화성과 철학성을 담보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본질, 그만이 바라보는 진실의 증언을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사진평론가 최봉상씨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한다.

 “조영상이 포착한 수많은 연꽃들은 득도의 희열을 위해 출가한 영혼들이 겪는 희로애락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듯 하다. 분명 조영상은 사진을 통해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순수를 찾고 정욕을 승화시키려 했으며 좌절을 맛보았고, 희열도 맛보았다. 이런 연꽃의 삶과 그의 사진가로서의 삶을 등가적인 위치에 놓으며 연꽃속에서 자신의 지난 사진적 시도들을 반추하려 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연꽃이 빛과 함께 피어나고, 어둠과 함께 꽃봉오리를 닫는다면 사진 역시 빛과 더불어 생성되고 빛의 소멸과 더불어 생성을 멈추기 때문이다.”

독학으로 일궈낸 장인의 열정

조영상(61·대전 가양동)씨는 옥천읍 문정리가 고향이다. 죽향초(47회)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야학을 했던 그는 70년대초 일찌감치 취업을 한다. KBS 송신소를 건설하는 것이 그의 직업, 지금 현재 있는 KBS의 송신소 80%가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젊었을 때부터 유랑 아닌 유랑인 생활을 한 것이다. 방송사에서 그나마 영상을 자주 접하다 보니 ‘영상’에 대한 호기심이 문득 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20대 후반 동료들은 돈을 모아 강남에 있는 아파트 한 채(당시 40만원 대)를 사놓았는데, 자신은 35만원을 주고 ‘니코마트 F-2'라는 사진기를 장만했단다. 그리고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희열을 느끼고, 필름 롤을 하루에 몇십 개씩 소모해도 밥먹은 것처럼 아깝지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과 입문은 제주도에 근무할 때 꽃 피웠단다. 76, 77, 78년 3년 여 동안 제주도에 근무하면서 그는 사진 잡지나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자신만의 사진세계를 창조해냈다.

정규 전문가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그가 유명 사진작가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열정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작품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쌀이 떨어져도 필름을 안 아낀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사진에 미쳐 있고,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가 짐작할 수 있다.

옥천의 관성사우회 창립에 역할

그는 고향에 내려와 사진 기술을 전파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80년대 심대보, 강경구, 김영래, 유정현, 유지복, 정진철씨 등에게 사진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관성사우회가 창립되도록 도왔다. 그 당시 군단위 지부에서 사진동호회가 창립된 것은 드물었지만, 그의 열정과 고향 사람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관성사우회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옥천지회로 그 명맥을 이으면서 ‘향수사진전’이라는 전국 공모대회를 열만큼 성장했다.

사진에 대한 그만의 철학

발로 찍는다고 했다. 하나의 작품이 되는 피사체를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고, 일단 찾은 다음에는 속속들이 알 정도로 탐색을 한 다음에 ‘구도’, ‘초젼, ‘노출’을 적절히 배합하며 자신이 원하는 상에 일치하도록 한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전국, 해외도 마다하지 않는다.

연꽃을 찍으러 김제, 부안, 아산, 전주, 부여 등을 돌았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러 인도, 네팔, 호주, 중국, 뉴질랜드, 내몽골지역 사막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한 달여 동안 8천km를 행군하며 작품을 찍으러 고생하기도 했다.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 기종은 550만원대의 ‘호스만 612’와 130만원대의 ‘아시아 펜탁스67’. 그렇게 비싼 가격의 카메라는 아니지만, 그는 모자란 것은 모자란대로 여백으로 남겨둔다. 그는 옥천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돌며 풍경사진 전시회를 갖는 것이 꿈이다. 풍경사진은 대단히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지만, 꼭 고향을 담아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다음 고향전시회가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