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옥천·청산군 국책보상운동과 정미의병 활약
[기고]옥천·청산군 국책보상운동과 정미의병 활약
전순표(옥천군향토전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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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08 14:39
  • 호수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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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군대해산으로 촉발된 정미의병이 일어나기 전에 1907년 2월 대구의 선각자인 김광제와 서상기 선생의 주도로 국채보상운동이 큰 호응 받으며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애국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그 당시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면서까지 국채를 갚아 대한제국의 독립에 대한 백성들의 열망은 뜨거웠다.■ 옥천·청산군 국채보상운동이에 호응하여 옥천군에서는 충북(忠北) 최초로 2월 말에 국채보상의무회 발기인회를 결성했다. 이어 1907년 3월 3일 정덕용 등이 옥천군(沃川郡) 국채보상단연의무회를 개최하여 국채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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