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서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고향 가서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내고향 옥천] 안내면 월외리 출신 넝쿨선생 수학과외 박문현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9.03 00:00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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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면 월외리 출신 박문현씨

몸이 허약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그에게 고향은 강인함을 심어주었다. 초등학교는 절반 이상 결석을 하며 골골 앓았지만, 중학교 때는 정근상을 탈 정도로 그를 단련시켜 주었다. 7km가 넘는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던 그 때 기억이 가물가물하단다. 안내면 월외리 본동 출신 박문현씨, 월외리 자연 마을 4개를 또렷히 기억한다.

용골, 선월동, 본동, 서답벌. 안내초 50회, 안내중 23회 출신, 대전 대신고를 나와 충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했고, 방송통신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또, 한창 때 고시공부를 하느라 법학도 열심히 공부했단다. 4남 4녀 중 차남. 큰 형님은 현재 옥천읍 대천리에서 500여 평 규모로 소를 키우신다. 노년에는 자신도 시골로 들어갈 생각을 갖고 있다.

옥천읍 오대리 출신인 아내와 벌써 상의가 끝난 일. 오래간만에 생물학 전공을 되살려 형처럼 축산업에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학원선생님이 축산업에, 전혀 새로운 도전이다. 도심에서 꿈을 꾸던 시절은 이미 접어들고, 그는 고향에서 또 다른 꿈을 꾸며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시 고향에 들어오기로 결정한 만큼 고향에 할 말이 많았다. 고향을 떠나 여러 가지를 접하며 많은 것을 배웠던 삶의 이력을 고향에 접목시켜 보고 싶었다. 그는 고향에 대해 많은 말을 했고, 그것은 툭툭 내던지는 말이 아닌 오랫동안 고심한 진심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고향에 대해 하고픈 말

박문현(45·대전시 삼천동)씨, 대전에서는 20여 년 학원생활에 잔뼈가 굳은 지라 이미 아이들 알기 쉽게 가르치는 ‘박넝쿨 수학선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만큼 교육에 더 관심이 있었던 그는 고향의 교육환경을 비롯해 농촌지역의 열악한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연 환경 만큼은 천혜의 자원이지만, 인위적인 문화를 잘 만들어내지는 못했죠. 교육환경도 열악하고, 문화시설도 흡족하지는 않죠.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학교에서 옥천지역 출신 학원 강사들을 초청해 무료 강의를 하게 하는 것은 어떤가? 고향의 후학들을 위해서는 한달음 달려올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또, 지용문학축제의 백일장도 대학과 연계가 되어 백일장에 장원을 한 학생은 대학 특별전형에 입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하는 프리미엄을 부여해야 글 잘 쓰는 학생들도 많이 모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시대는 똑같은 것을 잘하는 것보다는 한 분야에서 우뚝 서는 게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옥천의 학교도 특성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용시인의 고장이니까 문학만큼은 잘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그것을 담아내야 합니다. 아니면 다른 특기적성 교육을 강화해 그것만을 특화시키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만큼은 학교를 다니면서 특별하게 배웠다는 것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도자기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연극이나 사물놀이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이것이 단지 동아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얼마나 의지를 갖고 지원을 체계적으로 하느냐가 승부처일 것입니다.”

공동체 문화 다시 회복됐으면

교육에 열변을 토했던 그는 사회복지 부분으로 화제를 돌렸다.

“노인이나 가정주부들의 인력활용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앉아서 놀게 하지 마시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어 삶의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힘 안들이고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 짚공예도 있을 수 있겠고, 목공예, 가죽 공예 등 다양한 예술품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줘 이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을 단위 어떤 문화를 형성하게 만들고, 그렇게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자치단체의 몫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옥천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마을 안에서 공동체 문화와 의식도 자리 잡아지고,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런 문화를 체득할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관심은 그가 쏟아낸 말에 비례할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묵혀왔던 말들, 실타래처럼 술술 풀어냈다.

“인석이 형님(이인석 문화원장) 동생 재석이가 제 동기에요. 그 때 몰래 인석이 형님 토끼를 잡아서 토끼탕을 끓여먹은 기억이 나네요. 지금 19명 정도가 모여 월외리 모임도 하고 있구요. 고향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수구초심이라고 다시 태어난 곳을 돌아보고,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 아니겠습니까? 고향과 모교를 위해 얼마남지 않은 인생 신명을 바쳐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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