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같은 금강을 닮으려 하오
선비같은 금강을 닮으려 하오
함께사는 세상 [117] 기산 정명희 화백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8.27 00:00
  • 호수 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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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희 화백

물의 본질은 어디가나 똑같을 진대, 금강이라고 별수 있겠느냐 만은 그것은 범부의 생각일 뿐, 더듬이를 잔뜩 곧추세운 예술가들의 눈에는 그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존재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그에게는 금강이 보였다. 수려한 경치만 보지 않았고, 그 안의 신음하는 소리까지 귀 기울였다. 그에게 금강의 소리가 들렸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그 소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금강을 위로하려 했다. 그가 금강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이제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힘차게 일어서라고, 부활과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미려하지 않고 거칠은, 때묻지 않고 순수한, 덜 다듬어진 투박한 선비같은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싶다고 이름 지은 사야원(기산미술관, 군북면 대정리 방아실)에 둥지를 튼 기산 정명희 화백이다.

◆넉넉한 괴짜 화가
그는 얼마 전 월간 ‘미술세계’ 창간 20주년 기념 초대전에 초대됐다. 서양화가 둘, 조각가 하나, 동양화가 하나 등 모두 4명만 초청된 이 전시회에서 그는 동양화가 한 명으로 당당히 초청됐다. 

월간 ‘미술세계’는 그에 대해 ‘동양화 부문 초대작가 기산 정명희(61)는 금강 작가로 잘 알려진 인물로 자연과 그 생태, 그리고 생명존중의 필요성을 현대적 개념의 수묵법을 이용하여 그려낸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고, 생명의 영원성을 이상적이며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대한 이 같은 ‘주목’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단 대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로 서울의 벽을 간단하게 넘어섰다는 것과 금강이라는 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냄으로서 공감대를 넓힌 점, 그리고 예술의 세계를 넘어 직접 본인 자신이 현실로 뛰어들어 환경사랑 실천운동을 펼쳤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리고 뒤늦게 시작한 마라톤은 그에게 또 다른 생명력을 주었다. 그는 대청호 일주 울트라 100km 마라톤을 부활절이 오는 새벽까지 14시간 동안 밤새도록 달린 열혈 청년이며, 아이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스스럼없는 화가이다. 

“흔히 예술가는 외골수이고 생활이 불규칙적이며 스스로의 작품세계에 빠져 사회생활을 잘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정 화백님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예술인들도 생활인이오. 그것은 편견이랍니다. 많은 그림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 노력하지요.”

그는 예술가라는 거창한 이미지의 굴레에서 나와 본인도 ‘생활인’이라고 강조했다.

◆기산 정명희 방아실에 둥지틀다
충남 홍성 홍동면 수란리 출생,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전 대흥초로 전학, 한밭중학교, 대전공고 졸업,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몇 단어들로 조합된 그의 학창시절의 응축이다.

어릴 때부터 화가의 꿈을 간직한 그는 자신의 미래를 차근차근 쌓아갔다. 군 제대 후 70년대부터 대전에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산수화, 인물화, 추상화 등 여러 장르의 그림을 그리다가 80년대 ‘실경산수’ 수묵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그 때부터 대전과 가까운 옥천을 돌면서 금강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게 된다. 

그는 초등학교 때에도 인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방아실에 자주 놀러와 멱을 감곤 했다고 회상했다. 금강의 발원지인 장수군 뜬봉샘부터 영동, 보은, 옥천, 강경, 서천까지 금강이 휘돌고 있는 지역은 거의 다 찾아보았다고 한다. 

금강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보았기에 15m짜리 금강전도(현재 청양도립대 보관중)도 완성할 수 있었고, 금강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금강 가까운 곳에 살기로 다짐했고, 지난해 1월 방아실 끝자락에 둥지를 튼다. 이름하여 ‘사야원’, 기산 미술관이다. ‘사야’라는 말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뜻하며, 바로 선비정신을 나타낸다. 그는 금강이 비단과 같이 화려한 강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고 투박한 ‘선비같은 강’이라고 말했다. 그런 금강을 그는 닮고 싶다고 말했다.

◆마라톤, 그리고 환경운동
그의 작품세계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는 맨 처음 금강을 보았다고 했다. 그냥 막연하게 아름답게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금강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해갔고, 오염되어 아파하는 금강을 보며 사유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보는 금강’에서의 ‘생각하는 금강’의 변화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95년부터 그의 그림에는 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새는 아파했고, 그것에 그는 그림을 통해 고발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2000년대부터 그는 다시 부활과 희망을 노래한다. 황폐화되고 오염되며 썩어 들어가는 금강을 한단계 승화시켜 금강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 한다. 그의 근본기저에 자리잡은 이 같은 철학은 그를 실천운동에까지 이끌었다. 

95년부터 약 4년 동안 재해예방실천연합 공동대표를 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고, 99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하며 인간과 자연환경의 조화에 대해 생각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 때문에 단순하게 시작했다는 마라톤은 그에게 건강한 의식을 새겨주었고, 그는 요즘도 어김없이 새벽 6시에 일어나 7∼8km 명상의 질주 시간을 갖는다. 1999년에는 금강물을 페트병에 담아 성지순례로 간 이스라엘 요단강에 들이 붓고, 요단강의 물을 다시 담아 금강에 섞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 금강을 위해 노래할 것들이 많다. 방아실에 정착하며 금강과 가까워져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오는 12월2일 환갑을 맞아 ‘금강사랑 40년 전시회’를 대전 현대갤러리에서 가질 예정이다.

그의 이번 전시회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방아실에서 현대갤러리까지 21km를 마라톤으로 주민과 함께, 제자와 함께 뛰어 개관식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금강을 체화시키고 순환시켰다. 마라톤으로 금강의 물줄기를 자신의 몸에 새겨 넣었으며, 환경실천운동을 하고, 사유하는 금강을 그려낸 그림을 전시하면서 사람들에게 ‘사야금강’을 순환시켰다.

정명희 화백에 대한 단상

지난해 방아실에 미술관이 생겼다고 소문이 났을 때, 그냥 ‘화가 한 분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았겠지’하며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대정분교 전교생을 초청해 어린이 사생대회를 열었다고 했을 때,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그 현장에 취재를 하러 갔을 때, 그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깊은 환대와 선물, 그리고 전교생에게 직접 만들어준 상장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무언가 지속적으로 해줄 것을 스스로 찾았고, 그것의 실천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대정분교에 가서 직접 미술 지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어린이날을 맞아 두 번째 사생대회를 개최하고 대정분교 아이들을 초청했다. 먹을거리를 사오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선물로 주며, 그는 아이들에게 그림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로 인해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갖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그것은 내가 쓸모가 된 것이지요. 또, 그렇지 않더라도 먼 훗날 아이들에게 기억할 만한 추억 하나 만들어 준 것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는 옥천 군내 다른 초등학교도 먼저 시간약속을 잡고 방문한다면 언제든지 환영하겠다고 여러 차례 뜻을 밝힌 적이 있다. 그의 미술관은 늘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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