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이원면 장화리 출신 서울 강남병원 기획팀장 임환열 sinnail33@naver.com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7.23 00:00
  • 호수 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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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면 장화리 출신 임환열씨

그는 인터뷰에 앞서 글을 보내왔다. 말로 다 못할 뻔 했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정리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길게 쓴 글이었지만, 생각나는 그대로 늘어뜨리지 않았고 몇 번을 고치면서 다듬은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고향에서의 추억은 너무도 소중한 것이기에 아무렇게나 쓸 수 없었으리라.

글을 쓰는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는 그의 말속에서 따뜻함이 묻어났다. 옛날을 추억하며 행복한 글쓰기를 하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고향은 그런 곳이었다.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도 어머니의 품처럼 아무 말하지 않고 품어주는 곳,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늘 지켜봐 주는 곳, 그 곳이 바로 고향이었다.

이원면 장화리 출신으로 대성초(19회)와 이원중을 졸업하고 현재 강남병원 기획팀장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전공분야인 의료행정에서 박사학위과정에 있으며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까지 그는 사회에서 인정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고향을 빼놓고서는 그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제 가만히 임환열(48)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열심히 산 어머니와 아버지

나는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대성초와 이원중을 다녔다. 내가 태어난 장화리는 50여 가구 정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농토가 적어 몇 가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적은 논농사와 밭농사에 담배농사까지 지어 생활비를 보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는 매우 열심히 산 농부였다. 산의 활엽수 나무 잎을 베어 논에 뿌려서 거름으로 활용하였고, 밤에도 나가 논의 물을 관리하고 병충해를 살펴봤으니 벼 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동네분들을 말씀하셨다.

생활이 어렵더라도 수업료와 책값은 한번 말씀드리면 정확한 날짜에 주셨다. 유난히 인정이 많으신 어머님께서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산 덕분에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다. 어머님이 베푼 은혜는 평생동안 갚아도 부족할 따름이다.

나는 결혼해서 지금까지도 빠지지 않고 매주 일요일이면 어머님께 간다. 내가 가지 않으면 어머님이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선해 편안하게 휴일을 지낼 수가 없다. 대장암 수술로 인해 일찍 돌아가셨던 아버지에 대한 못다한 효도를 어머님께 다하고 싶다.

내고향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

농촌을 지키면서 오늘까지 장화리에 생활하고 계시는 고향분 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포도나무 재배 등 특수작물로 옛날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어 기쁘다. 우리 고향 이원 복숭아는 당도가 높아 품질을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복숭아 농사를 다 짓고 나서 주인이 과수원에서 철수하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올 때 친구들과 따다 남은 복숭아를 찾기 위해서 복숭아나무에 올라가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잎사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복숭아 몇 개를 딸 수 있었다. 일조량이 많아서였는지 아른한 추억 때문인지 그때의 복숭아 맛은 최고였다. 우리 집 뒤뜰에는 함박꽃나무가 있어 봄이면 어김없이 활짝 펴서 농촌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삶의 여유를 주었다.

늦가을에 감나무에서 딴 감을 저장했다가 한 겨울에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홍시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강향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을 매우 열심히 가르치셨다.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를 시키셨는데 공부 한 학생 모두가 이원중학교시험에 합격했다.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 주시던 선생님께서는 교장선생님까지 지내고 교직을 떠나셨다. 지금도 휼륭하신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현재의 나, 그리고

강물이 흐르면 돌이 다듬어 지듯이 희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주경야독하면서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지방공사 강남 병원 기획팀장으로 근무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다음 학기부터는 경원대학교에서 의료경영학과 학생들에게 병원기획을 강의하게 되어 더욱 더 바쁘게 보낼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모든 것은 늘 옆에서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집사람 덕분에 가능했다. 강남병원에 1985년도 말단 사원부터 시작하여 열심히 근무한 결과 2003년도에 기획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직장생활하면서 여러 편 연구 논문도 병원협회지에 발표하고 산재의료원, 보훈병원에서 강의도 하면서 자기 개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병원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기획 및 실무 교재를 집필하여 의료경영(행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사회생활 하면서 고향 친구가 좋은 것은 자라 온 배경이 같아 마음 속으로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대성학교 친구들이 이런 마음으로 유지되길 바란다.

연어가 태평양에서 살다가도 부화한 장소로 다시 와서 죽지 않는가. 그렇듯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찾고 싶은 곳이 고향이다. 고향에 아버님 산소가 있고 적은 농토와 집이 있어 정년퇴직하면 서울과 고향을 오고 가면서 살고 싶다.

깨끗하게 새로 집을 지어 시골의 눈 내리는 겨울의 옛 모습을 가족과 함께 보면서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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