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행정의 역할과 의무를 생각한다
[편집국에서] 행정의 역할과 의무를 생각한다
  • 권오성 기자 kos@okinews.com
  • 승인 2019.09.1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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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신음하는 주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유치부터 옥천읍 대천리 가죽공장 입주, 그리고 이미 수차례 불거지고 있는 축사신축까지 합법과 싸우는 주민들의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어간다. 단체로 항의하고 손 팻말을 들며 맞서지만 허공에 소리치듯 돌아오는 것은 거부나 무관심이다.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나 대천리 가죽공장 입주, 축사 입주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옥천군에 손을 내밀고 있다. 주민들 힘만으로는 자본과 힘을 가진 사업주나 건축주와 맞서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게다가 옥천군 등 공공기관은 사실상 유일하게 힘과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주민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그러나 옥천군 행정은 주민들의 요구를 꾸준히 외면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허가가 난 사항을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되돌리거나 바꿀 수는 없다는 의미다. 허가 전 마을에 알려 사업자와 협의할 기회를 달라는 요구에는 알릴 의무가 없다고 했다. 주민들의 삶을 지키고 보호하도록 함께 힘써달라는 요구에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행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공직사회는 합법과 싸우는 주민들에게 불법이라는 굴레도 씌우려 한다. 합법적 행정행위를 반대하는 것이니 주민들이 불법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공무원밥 꽤나 먹었다는 간부 공무원조차 공장이나 축사신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불법행위자로 본다. 말도 안되는 떼를 써서 보상이나 더 받으려는 철면피로 치부하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힘 있고 논리정연하게 법을 이용하는 자들이 합법 뒤에 숨어 주민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행정은 정말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다.

공장이나 축사 입주가 합법이라는 것은 주민들도 안다. 알면서도 합법과 싸우는 이유는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서다. 합법덕분에 주민들의 안식처나 삶터가 파괴되기에 나선 것이다. 공장이나 축사 건축으로 인해 악취나 소음, 해충 문제가 우려되고, 상시로 오가는 대형 차량에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옥천군 등 행정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권을 지켜달라는 의미다.

행정은 사업주나 건축주도 주민이라고 이야기한다. 삶터를 위협하지 말아달라는 주민들에게 건축주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합법적으로 공장이나 축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인데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막으면 되겠냐는 말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사업주 입장을 생각해보라는 이야기지만 이는 전제가 잘못됐다. 역지사지는 강자가 약자 입장을 배려하라는 의미지, 약자가 강자 입장을 수용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업주도 주민들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곧잘 이야기하지만 생각해보라. 사업주는 손해를 볼지라도 사업장을 옮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삶을 위협받고 삶터를 뺏긴다. 공장이 어디로 가든 가진자들은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지에서 악취나 오염걱정 없이 살고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굴 배려하고 이해해야 하나.

합법 행위를 반대한다고 해서 불법이 아니다. 합법과 합법은 얼마든지 충돌할 수 있고 이 과정을 중재 조율하는 게 공공기관인 옥천군의 역할이다. 주민들이 삶터를 지키고자 나선 행위와 사업주가 영리행위 등 두 개의 합법을 조율해 보다 나은 방향을 찾는 게 행정이 할 일이다. 법이나 지침에 따르기만 한다면 굳이 650여 공직자가 옥천군에서 활동할 이유가 없다. 옥천군은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잊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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