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면 귀곡리] 와우형,소목 등 마을 곳곳에 명당 간직
[청성면 귀곡리] 와우형,소목 등 마을 곳곳에 명당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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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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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곡리 전경

대안리는 열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하다. 그중 귀곡리에 속한 자연마을이 네 개에 달한다. 귀곡리는 법정리동상으로는 대안리에 속하기 때문에 대안리의 역사와 그 뿌리를 함께 한다.

대안리는 본래 청산현 서면 마장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1739년이나 1890년의 기록에는 1백26호가 살고 있었다는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후 1914년 청산현이 옥천군에 속하게 되면서 마장리는 도장리와 대안리로 나뉘게 되었다. 귀곡리에는 귀곡(상,하 귀곡 포함), 성촌(잿마), 지령, 소목 등 4개 마을이 있으며 가구수는 모두 34가구, 인구수는 남자 45명, 여자 48명 등 93명에 달한다.

이들 네 개 자연마을 중에는 잿마에 13호가 살고 있고 상귀곡 8가구, 하귀곡 4가구, 귀곡 지령 7가구, 소목 2가구 등이다. 마을 전체의 총면적은 1백22.6ha에 달하는데 이중 산이 가장 많은 50ha를 차지하고 논은 26.3ha, 밭이 21.6ha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분포상으로 보아 이 마을은 밭작물 보다는 벼농사 위주의 생산형태를 보인다. 그래서 논농사 위주의 생산형태를 보인다. 그래서 논농사 말고는 별다른 소득작목은 없는 편이다. 다만 잎담배 몇 농가와 고추를 조금 경작할 뿐이다.

논농사 위주의 생산 형태를 갖추고 있는 만큼 농경지마다 소형 관정들이 많이 개발돼 물 사정이 어느 곳 보다 좋은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쌀은 밥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다만 이곳들은 아직 경지정리가 안돼 있다. 청성면 장연리에 건설 중인 장연 저수지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데 올해 가을 경지정리에 착수할 것으로 계획되어 벼 생산 기반을 좀더 확실히 닦을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마을 앞 농로이자 진입로 포장에 대한 숙원도 함께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경지정리가 안돼 농로포장이 안되었었고 길도 구불구불해 진입로로서의 역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경지정리가 될 경우 농로가 더 넓혀지고 길도 포장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상하 귀곡 마을의 경우 능월리 청성주유소 앞 진입로를 따라 마을의 뒤로 돌아 들어오는 불편을 해소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18대에 이르는 자손이 이어져 5백년에 달하는 마을 역사를 자랑한다. 이밖에 잿마에는 전주이씨가 5,6집이 살고 귀곡 지령이에는 4, 5호의 옥천육씨가 거주할 정도로 마을 전체적으로는 다양한 성씨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을 둘러싸고는 명당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 전해온다. 이름하여 '와우형' 명당이라는데 귀곡 마을 뒤로 산의 혈이 좋다고 전해진다. 와우형 명당에 얽힌 얘기를 정리하자면 신비롭기 짝이 없다.

첫 번째 얘기, 마을의 지명을 얘기하면서도 우선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상귀곡인 구시골(지금으로 말하자면 소 여물통을 말한다), 소 목, 잿마, 가래골, 질마재 등의 지명이 그것으로 옛날에 조를 백석이나 수확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때 구시골 언덕 밑에 샘을 파고는 망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는 소의 여물통에 구멍을 뚫었기 때문에 재물이 새어나갔다는 비유에 속한다.

두 번째 얘기, 지금까지 전하는 얘기로는 구시골에 가서 소에게 소죽을 먹이고 소목 마을에 가서 멍에를 얹어 잿마에 가서는 재를 싣고 가래골에 가서 가래질을 한다는 얘기이니 지명이 온통 소와 연관되어 있다.  세 번째 얘기, 예로부터 와우형은 큰 명당으로 불려왔던 바 해마다 봄이면 명당을 찾느라 수십명의 지관들이 잿마 뒷산인 소실봉(소가 서있는 산)을 찾는다 한다. 마을지형 중에서는 소의 목에 해당되는 소목이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마을에서 있었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화를 이 마을 양형기(77)씨가 소개한다. 양씨가 어릴 적에 실제로 보았던 광경으로 양씨 문중의 묘 가운데 소의 멍에 자리라는 곳에 모셨던 묘가 있었는데 10월 보름을 기해 이장을 하려고 묘를 파기 시작하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땅에서 뜨끈한 기운이 솟아 올랐으며 30년만에 파헤친 묘임에도 불구하고 옻칠을 한 관이 그대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과 함께 서기가 서렸다는 얘기를 전한다. 그래서 이장을 중단하고 그대로 묘를 썼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후로 자손이 잘 안되는 등 우환이 겹쳤다는 얘기. 

현재 마을에는 몇 가지 숙원이 있다. 우선 자연마을이 네 개로 나눠져 있다보니 노인들이 모일 곳이 마땅치 않고 이에 따라 경로당 마련이 숙원이다. 주민들은 궁여지책으로 네 개 자연마을마다 원두막식으로 건축해 이용하는 방안을 제기한다.  육심현 보건소장, 양진원 민방위계장, 경영협력실 육동일씨, 육심석씨 등이 공무원들이 이 마을 출신, 최근 서울에 거주하는 출향인 육수원씨가 4개 자연마을에 1대씩 4대의 예취기를 마련해줘 미담이 되고 있다.

마을내 모임으로 양씨 문중 '진'자 항렬 모임인 삼진회(회장 양진국)가 꾸려져오고 있으며 잿마 마을의 이해동씨 부인인 이정순씨가 어른들께 잘하는 효부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 부녀회에서 3년전부터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회원들을 중심으로 1천원씩의 회비를 거출해 적립하는 것은 마을 발전을 위한 발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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