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면 답양리] 옥천의 특산품 '가산영지버섯' 재배
[안내면 답양리] 옥천의 특산품 '가산영지버섯'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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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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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면 답양리

산사에 비치는 투명한 아침햇살과 같이 아직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안내면 답양리가 뿌연 자갈길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92년초 전격적인 군도로의 승격. 용촌.답양 주민들의 숙원이자 보은군 수한면 은운리 주민들의 상용도로이기도 한 이 도로의 군도 승격은 그야말로 어렵사리 이루어졌다.

주민들은 군도승격추진위원회를 구성, 수없이 각 관계기관에 건의문이나 진정서를 제출했고 심지어 나중에는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되지도 않을 사업을 자꾸 건의만 한다'는 식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수년을 보내고 마침내 92년 군도로 승격된 것인데 현재 용촌까지는 확포장이 완료되었고 답양까지는 아직 흙먼지 나는 비포장이다.  이 비포장 군도를 들어가다 보면 우리 선조들의 애국충절을 향한 함성이 귓가에 절로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옛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용촌 밤티에 은거하던 조헌 선생은 가산사의 영규대사를 찾아 거사를 도모했으니 가산사야말로 이 고장 호국사찰의 본산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비록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가산사의 목불은 도지정 문화재로 귀중한 문화재였다.

화재로 소실된 법당은 가산사가 호국사찰로 이어지길 바라는 뜻있는 이지역 주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의병장 조헌 선생과 승병을 이끄는 영규대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가산사의 뒷산은 채운산이다.  옛부터 신선이 춤추며 내려오는 지형이라 하여 명당자리가 감춰진 곳이라고 전해지는 이곳에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거사가 도모되었다는 얘기는 우연이 아닌듯 싶다.

호국사찰 가산사와 함께 답양리를 대표하는 것은 안내면 뿐만 아니라 옥천군의 특산물이 된 가산영지버섯이다.  지난 1983년. 당시 느티나무버섯을 재배하던 이 마을 젊은이들은 무언가 특산품을 찾게 되었는데 마침 매체를 통해서 농촌진흥청에서 영지버섯 재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것이다' 싶어 영지버섯을 도입, 재배를 시작했다.

작목반 회장인 박희기씨를 비롯, 이병희 이장, 김윤구 새마을지도자 등이 바로 영지버섯을 답양리로 도입한 장본인. 이들이 처음 도입한 영지버섯이건만 지금과 같이 질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기도 했다.  재배 기술없이 특작물 재배에 뛰어들다보니 첫해에 그만 농사를 망쳐버린 것. 한해가 지난 84년 이들은 10명으로 영지버섯 작목반을 구성, 본격적인 영지버섯 재배의 길을 텄다.

이렇듯 어려움을 겪은후 정착된 영지버섯은 이제 움직일 수 없는 답양리 특산이요, 안내.옥천의 특산품이 되었다. 92년부터는 버섯을 영지환이나 분말로 가공,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영지버섯 가공공장을 설립했다.  7천여평의 면적에 들어가 있는 참나무 원목만도 2천5백톤에서 3천톤에 이르고 있으며, 15가구가 작목반을 형성, 서로 의지하며 가장 질좋은 영지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군도가 정비되기 이전에는 주로 장고개를 넘어 군북면 막지리에서 배를 타고 옥천에 나와야 했다. 어릴적 추억이 담긴 길이건만 이 장고개는 장고개 주변에 위치한 농경지를 가는 주민들을 빼고는 거의 통행이 없는 고개로 변했다.  새벽에 넘어가 옥천장을 본 후 한밤중에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었던 답양리 주민들의 애환이 서린 이 장고개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역할이 자연히 줄어든 것이다.

영지버섯이 지난 92년부터는 일본에 수출되어 제품의 질을 인정받은 후 미국에까지 수출길이 열려 옥천의 이름을 빛내고 있는 것과 함께 답양리에서 생산되고 있는 '판석'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재래식 방구조에서는 필수적이었던 '구들장'이 바로 이 판석으로 30~40년전부터 이곳에서 생산된 판석은 특히 질이 좋아 일본에까지 수출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주로 고기등을 구워먹는 '돌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답양리 군도 주변 곳곳에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리해놓은 판석은 마치 관광객을 이끄는 듯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경작작물은 수도작에다 영지버섯 이외에 9농가가 담배경작에 참여하고 있다. 산이 깊고 지형이 좋아 각종 유래나 전설이 담겨있는 이곳은 은운리와 경계부근 대청호변으로 잠재된 관광자원을 지니고 있는데다 싸리버섯.밤버섯.송이버섯 등 귀한 버섯을 채취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와 함께 올갱이를 잡으러 오는 손길과 겨울철만 되면 일명 '경첩이'라고 불리우는 개구리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개구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외지인들의 출현으로 이 마을주민들은 '개구리도 먹는구나'라고 알았을 정도...  영지버섯이라는 특산품이 있기에 젊은이의 수는 타 마을보다 많다. 10여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은 출향인들과 소동계, 연방계, 예비군계를 통한 상호부조를 이루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명절이나 마을의 길흉사가 있으면 이들 계원들을 중심으로 한 품앗이가 아직 변하지 않은 답양리의 인심을 보여준다. 

이들이 있기에 이곳에서는 초상이 나도 아직 중장비 대신 사람의 손으로 직접 묘소를 만들고 있다.  영지버섯 작목반 회장으로서 버섯재배기술을 지도하고 판로도 개척하는 박희기씨는 마을에서 열심히 일하는 주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본래 밀양박씨들이 많이 살아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10여가구에 그치고 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마을안길 포장과 교통문제. 하루 두번에 불과한 시내버스 운행도 문제려니와 겨울만 되면 차시간 때문에 새벽에 학교로 등교해야 하는 어린이들을 보는 학부모들의 시선이 못내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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