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면 현리] 봄배추 재배, 기술 축적 이룬 곳
[안내면 현리] 봄배추 재배, 기술 축적 이룬 곳
<1993년 7월 17일 취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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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면 현리

안내면 현리는 면소재지 마을치고는 비교적 작은 규모에 불과하다. 상권의 형성이 그렇고 농가수나 인구수에서도 그렇다. 안내 5일장과 우시장이 한때는 번창했을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시장터가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우시장터는 노인게이트볼 경기장으로 꾸며지고 있다.

그러나 도로여건의 발달과 대중교통수단의 발달로 시장은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갔고 급기야는 안내 5일장을 찾는 사람보다 직행버스를 타고 옥천이나 대전으로 장보러 나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우시장까지 없어지는 어쩔수 없는 세태의 변화를 겪게 된다.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많이 빠져나간 농촌. 오늘 현리의 현상은 그리 특별날 것도 없는 그런 모양이지만 삶을 긍정하며 적극적인 의지로 주민들을 이끌고 있는 젊은이들이 우선 눈에 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인 이들은 다름아닌 최영규 새마을지도자, 허대성씨, 조봉출씨, 민병용씨, 박재식씨, 박재흠씨, 이춘식씨 등의 젊은이로 이들은 곧 마을의 보배로 통한다.

이들 마을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소득작목을 개발하는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공동생산, 출하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해냄으로써 농가소득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현리의 전통적인 특작물인 봄배추를 재배하여 올해같은 배추폭락세에도 불구하고 15가구가 형성한 배추단지에서 6천7백만원의 조수익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계속적인 배추출하를 염두에 둔 이들 농민들이 상인들의 배추값 폭락에 따른 손해를 감안, 나중에 20%의 배추값을 돌려주었을 망정 농민은 상대적으로 이익보고 상인들이 손해보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일 억세게 하는 사람들이예요.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에 주민들도 그 뒤를 따라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요."  유순종 이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들을 칭찬했다. 이에 뒤질세라 이병훈(56)씨 등이 농촌지도소의 기술지도를 받아 재배한 것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게 했다. 이씨의 말에서 봄배추 재배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차남이기 때문에 결혼후에는 분가했었죠. 분가한 후 조그만 전세방에서 집칸이라도 장만하고 지금까지 견뎌온 것은 봄배추 덕분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봄배추 재배기술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한 자부심이 있다. 봄배추 이외에는 지금은 많이 적어진 담배와 3~4년전부터 심어지기 시작한 포도가 새로운 작목으로 대두되고 있다.

소재지이면서 171가구가 모여사는 마을. 이중 73가구가 농가일뿐 나머지는 비농가 또는 상가로 이루어져 있다.  면사무소, 지서, 농협, 신협, 초등학교, 우체국, 농조 등 면단위에서 필요한 각급 기관은 모두 몰려 있다.  옛부터 현리는 창말이라 불리우며 4티5봉이 둘러싼 마을이라고 전해져 왔다.

특히 신리.백제의 접경지로서 마을 앞산에는 성재라 불리우는 유적지 '화학산성'이 안남으로 넘는 고갯마루에 위치하고 있고 '창'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다하여 창말이라 불리워오는 등 접경지역으로서의 지명적인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동.북쪽을 가재봉.말봉이, 북쪽은 장구봉, 서쪽은 수부봉, 남쪽은 서낭봉이 둘러싸고 있어 5봉, 원남쪽으로 문티, 보은쪽으로는 듬티, 월외리쪽으로는 바듬티, 현리 한복판에는 야트막한 고듬티 등 고만고만한 봉우리와 고개가 옛부터 편안한 곳 안내(安內)를 형성시켜 왔다.

현리 사람들은 올해 가장 큰 마을숙원을 풀었다. 가뭄때만 되면 식수난에 허덕이던 이곳에 광역 간이상수도를 설치하게 된 것.  그동안 몇번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결국 수질좋은 지하수를 하루에 2백톤씩 공급할 수 있게 되어 현재 167가구가 상수도 혜택을 보게 되었으며 앞으로 예산확보 여하에 따라 정방리까지 급수지역을 확대, 그야말로 광역 간이상수도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식수문제의 해결 이후에 현리 주민들의 숙원은 아직 남아 있다. 새로운 경로당 건축과 안내면 소재지 소도읍가꾸기 사업이다.  소재지가 좁고 정비가 안된데다 인도마저 없어 이 사업의 필요성은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막상 예산문제에 봉착해 있다.  출향인으로 박덕흠(서울 원하공영)씨가 대표적이며 군 정태경 산업과장, 염종만 병무계장, 박구범씨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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