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면 학령1리] 자립의식, 단결심 강해 마을일 스스로 해결
[동이면 학령1리] 자립의식, 단결심 강해 마을일 스스로 해결
<학령1리...1993년 11월 27일 취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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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학령1리

동이면 학령1리는 적하리 부릉게 마을의 행정리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학령1리란 명칭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조합된 것이기에 일반인들은 어딘지 모르기가 십상이다.

더욱이 학령이란 지명이 학사골과 적령이란 마을명칭을 합한 것이기에 생경하게 들린다. 자연마을 명칭으로만 불러온 우리네 눈으로 본다면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조합된 지명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를 얻을 수 있다.

본래 부릉게는 `붉은 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붉은 고개의 한자 표기가 `적령(赤嶺)'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하리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적하리의 인구가 증가추세를 보여 마을이 1.2리로 분리된 것은 1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학령1리에는 현재 75호 32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옛부터 경주김씨가 한데 모여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던 만큼 지금도 25호 정도가 경주김씨이다.  본래 마을의 형성은 박씨에 의해 이뤄졌다고 전하나 모두 떠나버리고 경주김씨의 9대조인 김한준 공이 이곳에 정착, 집성촌의 문을 열었다.현재 마을입구에는 경주김씨 세거비가 세워져 있어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 옆에는 역시 경주김씨였던 김동시 구휼비가 있다.

이 비는 동이면민들이 세워준 것으로 손자인 김기석씨가 적하리에 살고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시 소출이 5백석에 이르는 부자였던 김동시 공은 면전체에 흉년이 들었던 어느 한해 1년간 동이면민들의 세금을 모두 부담해 주었다는 것.  적하리는 동이면 세산리, 금암리와 함께 옥천포도의 주산지로 이름이 높다. 현재 28호가 참여하고 있는 포도작목반(회장 박희철)에서는 한해 평균 2억여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이중 17농가가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어 시설재배농가가 많은 편이다.

주산물인 포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5년전 쯤 김무호씨, 김기학씨, 육남균씨 등이 처음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벼농사 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포도농사에 주민들이 눈을 돌리게 된 까닭이다.  학령1리에는 현재 군내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동이농공단지가 입주해 있고 동이면내의 유일한 중학교인 동이중학교가 위치, 교육의 산실역할을 하고 있다.

농가 이외에 상가나 공무원 등 직장인의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생선 매운탕이 유명한 중학교 앞 초은식당에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이 최근들어 마을의 개발에 기대를 걸었던 점은 농공단지의 입주. 농외소득증대에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은 실상 농공단지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농촌 노임의 상승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가져온 것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농공단지가 들어선 지역이라면 어느 곳이든 가졌을 이런 기대가 오히려 노동력 부족과 노임 상승의 요인으로 변하자 주민들의 이러한 실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6~7명의 비교적 젊은층만이 농공단지에 취업하고 있을 정도로 처음의도와는 크게 못미치는 모양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포도라는 특산물을 재배하고 있어 소득이 비교적 안정돼서인지 마을주민들의 자립의식과 단결심은 대단하다. 남의 힘을 빌지 않고도 주민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능력이 남다르다.

지난 90년 마을안길 포장사업비로 지원된 예산으로는 일부밖에 포장할 수 없게 되자 집집마다 추렴하여 500m에 이르는 안길을 말끔히 포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마을숙원으로 제기되어왔던 마을회관 및 경로당을 주민들의 힘으로 93년 건축을 마치는 저력을 보였다. 5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이 경로당은 주민들의 정성과 출향인들의 관심속에 12월5일 준공식을 갖게 된다.

물론 경로당이 완공되기까지의 숨은 공로자도 많다. 김풍호(서울거주)씨가 30평에 이르는 부지를 희사했는가 하면 김연철, 김진종(서울거주), 김기흥, 김연종(서울거주)씨 등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출향인 중에는 현재 군에 근무하는 김권오 소령도 포함되어 있다.

옛부터 마을은 `챙이혈'이라 불러왔다. 마을의 뒷산을 배경으로 앞마당이 넓게 트인 형국인지라 빈부차가 심하지 않고 특별히 못사는 사람이 없다고 전한다. 특히 마을의 적하교 건너 청룡날끝에는 `개구리봉'이라는 야트막한 구릉이 있어 먹이 걱정이 없는 마을의 풍수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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