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현리] 월이산 정기 이어받은 옛 이원장터
[이원면 현리] 월이산 정기 이어받은 옛 이원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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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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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리 전경

"이원리는 원래 옥천군 이내면 현리와 역리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로 후에 이원리라 이름을 고쳐부르고 현재에 이른다".  군내의 각 마을을 소개하는 옥천향지에는 이원리를 소개하는 첫 문구로 이와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이어 옛 기록을 인용, 1739년의 신유장적에는 64호가 살아왔던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현리하는 지명은 이 마을이 신라 초기에는 소리산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때까지는 이산현이라 불렸던 이원면 소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현(縣)의 소재지였던 이 마을에 대해 현(縣)리라고 불렀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의 소재지였던 이곳은 행정관청이 들어서 있었고 조선시대가 마감된 후까지 장터 등이 있었던 이원의 뿌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 마을의 집하장이 있는 곳이 옛 이원장터가 있던 곳으로 숱한 애환이 수백년 동안 마을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했을 터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직도 현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서의 자부심을 안고 생활한다. 지난해 마을 어귀에 건립한 마을자랑비에도 이러한 주민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원장이 현재의 소재지인 신흥리로 나간 연대는 주민들의 기억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주영환(76)씨의 아버지 대에 있었던 장터의 풍경 등이 주민들의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과 경부선 철도가 새로 가설돼 교통 발달과 함께 시가지가 새로 형성되었다는 점 등을 감안 할 때 일제침략 초기쯤으로 추정될 따름이다.

현재 신흥리 등 주변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가 장이 소재지로 나감에 따라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는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현재도 현리는 소재지를 제외하고는 제법 많은 수인 8가구가 거주하는 비교적 큰 마을에 속한다. 마을 주변으로는 옛부터 터가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월이산의 정기를 이어 받았음인지 마을 바깥에서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잘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는 현리.  월이산은 마을의 한 옆으로 다소곳이 고개를 들고 있는 일향산과 함께 이 부근에서 전해오는 월이와 일향의 전설의 고향으로 유명하고 이웃에 있는 성재산은 유명한 이원리 토성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월이산 봉수대는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중요한 길목에 있는 봉화로서 군북면 추소리에 위치한 고리산 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마을을 두고 어떤 이들은 '왕조혈'이라 하여 어느 곳보다도 좋은 땅이라고 말한다. 초계주씨 문중이 17대째 살아온 이곳 현리는 옛날만 해도 절반 이상이 같은 문중이었으나 현재는 10여 가구 남짓 살고 있을 뿐이다.

뿌리를 갖고 있는 마을로 지난해 말 충북도 유형문화재로 새로 지정된 '창주서원 묘정비'가 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고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몇 해 전까지는 월사 이정구 선생의 시집 판목을 보관하던 장판각이 있어 충북도 유형 문화재로 보존되었다.  이밖에 마을에는 거북바위, 선바위 등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볼거리들이 있다.

마을에서 주로 생산되는 주산물은 복숭아를 들 수 있다. 마을의 거의 모든 농가에서 재배하는 복숭아는 지난 60년대부터 마을의 주요 산물로 부각되었으며 마을에서 복숭아를 재배한 건 이미 50년대의 얘기다.  특히 마을 주민들은 복숭아의 본산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데 일제 때부터 묘목업을 해온 고 주성진씨가 사과 묘목을 재배하면서 마을에 과수원이 들어서게 된 계기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복숭아를 재배한 주민들은 면내에서는 소득 1위라는 소리를 들었고 지금도 어느 마을 못지 않은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복숭아 재배는 마을 원예조합(회장 주종원)에서 공동으로 농약을 구입, 배부하는 등의 협업을 통해 대부분이 이루어지는데 그동안 모은 3천여만원의 자산을 이용해 회원들에게 환원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특히 복숭아에 관한 한 현리에서 계약이 이루어진 후에야 다른 마을에서 계약을 마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복숭아와 함께 묘목을 재배하는 농가들도 많아졌다. 현재 주민들과 출향인들을 잇는 모임은 없는 상황이나 관계는 비교적 원만한 편.  지난 70년대에 건축된 마을회관 재건축이 시급한 숙원사업의 하나로 대두되어 있으며 올해 가을에 건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마을에 필요한 각종 그릇이나 자잘한 살림살이는 부녀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으며 김병운 판사(수원)을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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