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구미리] 이원 묘목 생산의 본고장 자긍심
[이원면 구미리] 이원 묘목 생산의 본고장 자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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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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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리 전경

이원면 구미리는 43가구 1백80여명의 주민들이 산다. 마을이 큰 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추고 대대로 이어진 마을이다. 특히 금녕김씨 집성촌인 이곳은 4백여년에 달하는 마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김왈흥(82) 노인회장의 7대조인 김상헌 공이 마을 산기슭 쪽으로 처음 터전을 잡은 후 김 노인회장의 손자대까지 포함한다면 11대때 마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그래서 옛부터 구미리에 살면 '김서방네'로 통한다는 말도 있었다. 여느 집성촌을 가보아도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구미리에 사는 금녕김씨는 현재 살고 있는 16호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이루었었다.

마을에 살고 있는 문중의 수보다 나가 있는 수효가 많다 보니 이제 서울 등 외지에 사는 문중의 수가 더 많다. 서울 쪽에 2백호 가량의 문중이 있음에 비추어 시대변화에 따른 집성촌 해체양상이 뚜렷하다. 구미리 금녕김씨 문중들은 대사성곡파로 원동1리 금녕김씨와는 파를 달리한다.

구미리 주요 소득작목은 뭐니뭐니해도 배, 자두, 감 등 유실수 묘목을 비롯한 묘목재배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묘목 생산의 중심인 이원면내에서도 주요 묘목 생산지로 꼽힌다.  주민들 중 80% 이상이 묘목을 재배하고 있는 것을 비롯, 해마다 소득금액이 일정치는 않지만 마을에 들어오는 묘목 재배소득이 3억5천만원 이상은 되리라는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묘목의 경우 좁은 면적에서도 다량재배가 가능한 현실임에 비추어 마을내 경지면적 31ha 가운데 10ha 이상이 묘목 재배지로 분류된다는 것은 상당한 양에 해당된다. 구미리 묘목 재배역사는 이원면내 묘목 재배 시작과 함께 하며 고 김복헌씨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강청리 곽종혁씨가 1930년대 '남선종묘사'를 개업한 이래 고 김복헌씨가 묘목 재배에 참여했으며 현재 구미농원을 운영하는 김일태씨가 1942년 과수 묘목을 생산한 것으로 이원면 묘목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구미리 일대가 1940년대 이후 연간 50만주를 생산할 수 있는 묘목의 본고장이었음은 묘목재배에 종사한 당사자들은 물론 이원주민들이라면 대략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재 구미리에서 생산되는 묘목은 대부분인 80% 이상이 유실수로 해마다 경기 흐름에 크게 좌우돼 올해의 경우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포도 묘목은 대부분 갈아엎고 말았다. 포도 묘목의 실패에 따르는 여파는 앞으로도 2∼3년간 후유증이 있으리라는 전망이고 보면 묘목경기 활성화가 현재로선 관건이다.

마을 내에는 이원에서도 우수한 종묘업체가 많은데 미림농원(대표 김영일), 제일농원(대표 김봉남), 구미농원(대표 김일태), 송림농원(대표 송희섭), 국제농원(대표 김덕규), 애정종묘(대표 주정환), 황금농원과 김일용씨가 운영하는 농원 등 크고 작은 종묘농원이 있다. 마을 대부분의 농가가 묘목업에 종사하다 보니 연간 마을에서 지출되는 인건비만도 상당액에 달한다. 영동 양산 등지에서 들어오는 일꾼들에게 주로 구미, 송림, 미림 농원 등 마을 내 종묘사에서 지불되는 인건비만도 연간 1억5천만원이상 되리라는 추정이다.

현재 마을 내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있다. 이중 지난 80년대에 군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이 마을 김병화씨의 고조부가 심었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어 대략 2백여년의 수령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구성 초기 산기슭에 있어 마을의 바깥쪽에 있던 이 느티나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마을이 커져 이제는 마을 중앙쯤에 위치하게 되었다.  특히 주민들은 마을과 길 건너 대성산 문필봉이 마주보고 있어 문필봉의 정기를 받았으며, 이에 따라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실례로 유난히 학계 인사들이 많은 것은 물론 각 대학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 많다.  김정규 건국대 교육대학원장을 비롯, 김진영(김정규씨 아들) 광운공대 학생처장, 김진석 명지대 사무처장, 김진오 홍익대 사무처장, 김박규 한국감정원 이사와 더불어 대성초교 교사인 김덕중씨와 김봉규씨, 김태헌씨, 김택규씨 등도 각각 교편을 잡고 있다. 또한 김흥준(김진석씨의 아들) 대전지법 판사, 강영근(외환은행 근무)씨 등 법조계 및 경제계 인사들로 있다.

이는 구미리 주민들이 인근에 비해 유달리 교육열이 높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이들은 교육열이 높았던 대신 마을에 주민들이 얼마 남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방 한 칸에 불과하고 낡아 사용이 불편한 경로당 마련이 현재 마을의 가장 큰 숙원으로, 마을 입구의 집하장 확장도 숙원으로 꼽힌다.

집하장에 대해서는 주위의 하수구를 복개하면 방안을 찾을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경로잔치 기금(현재 96만원)을 이용, 매년 경로잔치를 하고 있는 점과 마을 부녀회에서 1백70만원 상당의 기금을 운용, 마을의 잡일과 주민간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점 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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