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하예곡리] 인삼 주소득원, 한때 대추나무 많아 '대추곶이'로 불려
[청산면 하예곡리] 인삼 주소득원, 한때 대추나무 많아 '대추곶이'로 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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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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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예곡 전경

청산면 소재지에서 보은군 마로면과 속리산으로 향하는 지방도를 따라 보청천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잠깐.  교평리 평상복 고개 쯤에 다다르면 어느덧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여기에서 지방도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만월리와 대성리를 거쳐 보은으로 향하게 되고 오른쪽 폭좁은 도로를 택해 보청천을 가로 지른 예곡교를 건너 처음으로 만나는 마을이 하예곡리(下禮谷里)이다.

본래 청산면 북면 예곡리(藝谷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삼방, 명티, 법화리가 별도의 마을로 분리된 후 상예곡과 하예곡으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예곡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예실'이란 옛말을 한자 발음대로 쓴 것으로 애초 예(藝)자는 예(禮)로 변천되었다.

현재의 마을터는 마을 노인들의 얘기를 빌면 대추나무가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하여 '대추곶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마을 주위로 온통 꽉 들어찬 것은 물론 아름드리 대추나무까지 있었다 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대추나무가 많았던 흔적이 전해진다.  이 마을 구경태(69)씨는 15살 때까지만 해도 대추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이후 시나브로 나무가 없어졌다고 기억한다.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82가구에 2백50여명에 달한다. 마을에는 대대로 밀성박씨와 능성구씨가 쌍벽을 이루며 살아왔다. 이중 밀성박씨가 35가구, 능성구씨가 30가구 정도에 달하며 여타 성씨는 최씨, 전씨, 안씨, 이씨, 설씨, 장씨 등이다.  80가구가 넘는 비교적 큰 마을인 하예곡에 불과 8개 성씨가 살고 있는 것이다. 각성바지가 살고 있는 마을에 비한다면 특이한 일임에 틀림없다.

마을 내에서는 밀성박씨와 능성구씨가 각각 15대째, 11대째 살고 있는 문중이다. 물론 이들 두 문중보다도 마을에 전주최씨가,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문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중으로 전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단 한 가구만이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마을을 반분하다시피 하고 있는 밀성박씨와 능성구씨가 각각 마을의 아랫쪽과 윗쪽에 각기 터를 잡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실. 살아온 위치가 아래, 위로 명백히 구분되기는 해도 주민들간 화합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하고 최대의 소득원은 역시 인삼이다. 전체 농가의 60% 이상이 인삼을 경작하고 있으며 타지에 나가 재배하는 면적을 제외하고도 마을내에 30ha 가량이 인삼 재배면적이다. 이는 마을의 전체 농경지 가운데 40% 가량을 차지하는 면적이며 연간 인삼 재배소득이 3억5천만원에 달한다.  지금으로부터 15∼16년전 청산면에서 인삼재배를 시작할 당시부터 인삼재배가 시작된 하예곡은 10년쯤 전부터 많이 재배되었으며 현재 청산면내 각 마을 중 인삼재배 농가 및 면적이 많은 마을 중의 하나다.

마을 내에서는 구성림, 박일철, 구운림, 박육현 이장 들이 인삼을 많이 재배하는 농가로 알려져 있는데 주민들 중 일부는 최근들어 인삼재배가 크게 늘어나 가격이 하락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인삼재배 이외에 포도와 잎담배 재배가 3∼4가구에 이르는 한편 농한기를 이용, 곶감을 생산해 부업으로는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면내 최대 곶감 생산마을인 하서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마을내에서 생산되는 감을 포함해 연간 8천만원 가량의 부수입을 올린다.

특히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인삼재배를 쉽게 하기 위해서 마을 내에서는 품앗이가 일반화 되어 있다. 마을이 크다는 오인도 있지만 인건비 지출을 그만큼 줄일 수 있는 것도 인삼재배 농가들에겐 큰 도움이다.  마을 앞에는 비지정 문화재이기는 하지만 병자호란 때의 충신인 박문상 충신문이 있다. 박문강 충신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종 6품 벼슬인 훈련원주부로 있었던 바 청나라 군대가 몰려오자 최후까지 명령을 지키며 장렬히 순직했는데 공적 내용이 묻혀오다가 1812년에야 조정에서 충신으로 정려(旌閭)되었다.

출향인으로는 서울에서 우성염직을 경영하며 경로당 신축에 큰 도움을 준 구제남씨와 마을회관 건립시 관심을 보여준 박만수(서울 거주)씨 등이 있다. 마을에는 상여계가 있는 바 구씨가 상을 당하면 박씨가, 박씨가 상을 당하면 구씨가 번갈아 일을 도맡아 하는 등 마을 화합의 본보기로 자리잡았으며, 이 기금으로 공동안테나 설치 등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도모하고 있다.

주민들 가운데는 팔순 시어머니를 모시며 친 모녀지간처럼 지내는 이범숙(58)씨를 비롯해 4대가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제형씨 부부와 마을지도자 박윤수씨, 박구현씨 등의 효행이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지난 81년 조성된 1천5백평 가량의 마을농장 수입으로 자질구레한 경비를 충당하고 있는 하예곡 주민들은 마음으로 깊은 정을 나누며 사는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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