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묘금초 24회', 제일 찬란했던 묘금학교의 기억 ··· 아직도 교가가 생생해
[고향사람] '묘금초 24회', 제일 찬란했던 묘금학교의 기억 ··· 아직도 교가가 생생해
청성면 양저리 출신 충남젓갈상회 안금순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18.08.23 22:18
  • 호수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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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금초 총동문회 첫 창립때 애써, 임원진만 9년째묘금초등학교 24회 졸업생은 끈끈했다. 50년 전, 1960년대 말 70년대 초 묘금초는 전교생이 6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정점을 찍었다. 한 학년에 2개 반 100여 명이 될 정도로 호황을 맞았다. 이 당시 묘금초가 감히 분교가 되고 폐교가 될 상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역으로도 상상은 불가하다. 아이 울음소리 듣기 어려운 청성면 묘금리에 묘금초등학교에 600여 명의 학생이 다녔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렵다.청성면 양저리에 살았던 안금순(60, 충남젓갈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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