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고향사랑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우리 가족의 고향사랑 한 번 들어 보실래요?''
[내고향 옥천] 청산면 인정리 출신 대전보건대학교 교수 이상귀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7.10 00:00
  • 호수 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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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귀씨

청산면 인정리 국화동, 고향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로써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환갑이 다 지난 62세의 나이에 고향의 기억을 넌지시 꺼내보는 그에게 짧은 시간 재촉하는 기자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이야기는 오랫동안 웅크리고 앉아 나오기만 기다렸던 콩깍지 속의 콩들처럼 산발적으로 툭툭 튕겨져 나오지만, 오랜 세월만큼 소화하기가 버거워 그저 짧은 편린들만 가져갈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은 것은 단지 고향을 그리는 넋두리만은 아니었다.

고향과의 튼튼한 동아줄

고향과의 나름대로의 튼튼한 동아줄을 만들려는 이상귀씨 가족들의 독특한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8월15일 광복절의 의미는 이씨 가족에게는 ‘고향으로의 귀환’을 의미한다. 

‘다시 찾은 나라’라는 의미와 ‘다시 찾은 고향’이라는 의미가 그리 달리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상귀씨 5남매를 비롯한 대가족 50여 명은 8월15일 청산초등학교 강당에서 1박2일 가족 수련회를 갖는다.

아버지의 이름 중 ‘정’자와 어머니의 이름 중 ‘운’자를 따 만든 ‘정운회’, 이것이 그 인상적인 모임이다. 이상귀씨의 형제자매들 5남매의 아들, 딸, 며느리 등 50여 명의 대가족이 8월15일이 되면 청산으로 다 내려온다. 어마어마한 대 이동이다.

이들은 벌써 시류에 뒤지지 않게 그들만의 ‘정운가족 (http://cafe.daum.net/jwfa)’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만들어 상시적으로 의견교환을 한다. 그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가족 직계도가 대문에 걸려있다. 회원수 54명,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그 곳에서 그네들은 평등하게 소통한다.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졌다.

이것은 이제 하나의 전통으로 굳혀져 이상귀씨 가족이 되는 사위, 며느리에게도 하나의 멋진 통과의례가 된 것이다. 그들에게 청산은 새롭게 각인되리라.

아버지 위한 멋진 선물

그들은 고향과 아버지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한낱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 소중하게 가꾸고 계속적으로 인연을 맺기를 희망했다. 가족모임에 아울러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5남매가 아버지의 자서전인 ‘인고의 세월’을 펴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골 촌로였던 아버지는 이상귀씨 5남매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했다. 교장을 하다가 정년퇴임한 큰 형 이상성(68·청주)씨가 살아생전 아버지의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해 집필을 맡았고, 나머지 자녀들은 ‘내가 본 아버지’라는 문구로 집필에 동참했다. 인쇄되어 나온 그 책은 50여명의 대가족들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후배에게 주는 작은 선물

과거와 미래는 즐겁게 만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딴 ‘정운가족 모임’은 5남매의 모교인 청산초에 매년 작지만 소중한 선물을 한다. 후배들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이 그 것.

이상귀씨 자신도 청산초(41회), 청산중(11회)을 나왔고, 나머지 5남매도 모두 청산초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들 가족에게 있어 청산초는 남다르다. 없이 살던 그 때, 공책을 몇 번이고 다시 썼고, 몽당연필 하나도 아깝게 썼던 그 때를 회상하며 후배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학용품이라도 전달하고 싶어 마련한 장학금이라고 이상귀씨는 말했다.

고향을 사랑한 이상귀

그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이상귀(62·대전 가양동)씨는 대전보건대학 학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유아교육과 교수이다. 그가 길러낸 학교 학생들만 3만5천명, 학과 학생들은 1천100명에 가까울 정도로 25년여의 오랜 세월 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었다.

공주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심리와 상담관계’를 전공한 그는 대전보건대학 창립 때부터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양성해 냈다.

6.25전쟁 때는 학교가 폭격을 당해 교회에서 만든 공민학교에서 가마니를 깔고 나무에 걸은 칠판으로 공부를 했다던 그, 장위리 보에서 하루종일 멱감고 올뱅이 잡던 일이 기억난다는 그, 소달구지 타며 마을을 휘돌았던 기억이 아련하다는 그가 다시 고향을 그렸다.

청산초 동창 모임인 개미회도 여름, 겨울마다 꾸준히 하고 있고, 중학교 동창들은 부부 동반으로 끊임없이 만남을 유지한다는 이상귀씨는 고향 ‘청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그를 청산의 오랜 친구인 박명식(청산 박약국)씨가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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