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판기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쌀값
<기고>자판기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쌀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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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70.01.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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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와 함께 쌀을 사기 위해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0kg 1포에 3천 원이나 올랐다. 몇 년 동안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쌀값이 오랜만에 오른 것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쌀값이 올라서 비싸게 사고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쌀에 대해 필자와의 인연은 남다르다. 70년대 중반 농촌지도 공무원으로 통일벼를 개발보급 한 녹색혁명운동에 직접 동참한바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주곡인 쌀을 자급달성 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 이래 처음으로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만 하면 긍지와 자부심이 생긴다.

그간 정부에서는'경제 발전'과 '서민물가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농업과 농민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도시 대다수 서민도 쌀값이 오르는 것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다. 주식인 쌀에 지출하는 가계소비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년 전 쌀값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많이 변했다. 밥이 중심이었던 한국인의 밥상구조가 완전히 역전됐다. 밥 먹는 양이 줄었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 당 쌀 소비량은 평균 61.9㎏이었다. 하루 쌀 소비량이 공깃밥 두 그릇 분량에도 못 미치는 170g에 불과하다. 가격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약 320원, 한 달에 9천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하루 쌀값이 자판기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제는 서민 경제에 쌀값이 미치는 영향도 매우 미미하다. '서민 물가 안정'이 더는 쌀값 현실화의 발목을 잡을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현재 국내 쌀 자급률은 100%를 넘었지만 다른 식량자급률은 매우 낮다. 보리 24.6%, 밀 1.8%, 옥수수 3.7%, 콩 24.6%에 불과하다. 전체 곡물 자급률이 지난해 기준으로 23.8%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대다수 선진국이 100%를 훌쩍 넘어서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식량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 어떤 정책보다 우선하여 경제원리가 아닌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와서 비정규직, 최저임금제 문제 등 다양한 복지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농업이나 농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농업의 수장인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업비서관 자리 모두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비어있는 중이다. 공석 기간이 무려 100일이 넘는다. 정부가 농업과 농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바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소비자와 국민들도 될 수 있는 대로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집밥을 먹는 식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외식을 한다면 비싼 소면이나 냉면보다는 공기밥 한 그릇을 시켜 먹는 농민에 대한 작은 배려가 필요한 때다.

다행히도 요즘 혼자 사는 가구가 늘다보니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햇반이나 밥버거 등의 소비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쌀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그나마 필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다.

신록의 들녘에는 새벽부터 농민들이 모내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식량 자급율이 저조한 선진국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벼'에 작대기 하나 그으면 '뼈'가되고 '살'에 'ㅅ'자 하나 보태면 '쌀'이 된다. 쌀은 우리민족의 '뼈와 살'이다. 하루속히 쌀값이 현실화 되어 농민들의 깊이 파인 주름살이 활짝 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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