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로 얻은 값진 '메달'
꼴찌로 얻은 값진 '메달'
전국소년체전을 다녀와서-안내중 3학년 김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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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6.12 00:00
  • 호수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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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영이(사진 오른쪽)는 비록 경기에서 꼴찌를 했지만 꼴지에게 보내는 많은 따뜻한 격려의 박수와 주위분들의 사랑으로 일등보다 값진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사진제공 : 안내중학교

전주, 내게는 낯선 곳이다. 난생 처음 와보는 곳. 왠지 모를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전국 소년체전이란 큰 대회를 앞둬서인지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한차례 훈련을 했다. 마지막 훈련이다.  그동안은 빨리 대회를 치루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는데, 막상 마지막 훈련이라니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실격은 당하지 않을까? 꼴찌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에 몸이 돌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나처럼 경보 훈련하는 선수들만 눈에 띄고 나보다 훨씬 실력이 월등해 보였다. 휴∼ 한숨이 절로 났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그동안 고생하며 훈련한 성과를 다 쏟아붓는 날, 간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해 몸이 찌뿌둥하다. 몸 보다 마음이 더 편치 않다. 부모님, 담임선생님, 교장선생님까지 응원하러 이 곳에 와 주신다는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까봐 걱정이 돼서였다. 

솔직히 난 자신이 없었다. 무리한 연습으로 인해 오른쪽 무릎 힘줄에 염증이 생겨 3일전부터 물리치료를 받아오던 상태였고, 다른 시도선수들과 비교해보면 내 기록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날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충북대표팀 코치님의 차별이었다. 물론 우수 선수를 더 챙기는 점은 이해가 갔지만, 그 차별은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들은 모두 와서 코치님께 마사지를 받으라 하셨으면서 무릎이 아픈 내게는 냉정히 그냥 방으로 돌아가라 하신 것이다. 내게 전혀 신경을 써주지 않으시는 코치님의 차별에 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오후 4시25분 전주 종합운동경기장에서 나의 멀고 먼 여행은 시작되었다.충북이란 단어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시작한 5000m 경보 여행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땅! 출발소리에 처음에는 선수들이 자리싸움을 하느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뒤에 따라오는 선수에게 뒤꿈치를 밟히기까지 했다. ‘헉헉헉’ 점점 턱까지 차오르는 숨에 힘은 빠지고 무릎이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점차 나는 뒤로 밀려났고, 멀찌감치 떨어져 결국엔 나 혼자 경기를 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부모님도 관중석 어딘가에서 날 보며 응원하고 계실텐데, 학교에서는 환송회까지 해주셨는데, 날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너무 힘들었다. 무더운 날씨에 아지랑이까지 피어나는 운동장에서 12바퀴 하고도 반을 돌기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을 때 포기하고 운동장을 나가는 경보선수가 보였다. 힘이 빠져 터벅터벅 경기장을 나가는 그 선수를 보면서 나는 갈등이 생겼다. ‘나도 포기하고 나갈까? 말까? 어차피 순위 안에 들기는 이미 글렀는데 포기해 버릴까?’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정말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꾹 참았다. 비록 경기는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이제 진짜 나 혼자다. 마지막 바퀴 남은 거리 300m, 200m, 100m, 1m 드디어 결승선 통과! 꼴찌로 완주한 내게 관중석의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쳐 주었다. 꼴찌인 내게 일등으로 통과한 선수보다 더 큰 박수갈채를 보내주시는 관중들, 너무 감사하고 감사했다. 

경기의 승리자로써 받은 박수는 아니었지만, 그 커다란 응원과 격려의 박수가 코치님의 차별로 인해 생긴 내 마음속 상처를 말끔히 치유해주었다.  담임선생님께서 경기를 마친 날 꼬옥 끌어안아 주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 자신의 승리자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긴 하였어도 사람이란 동물의 욕심이 워낙 한도 끝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1등을 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과 기대에 만족시키지 못했단 죄송스런 마음으로 눈물이 났다.  선생님께서는 잘한거라고 나를 위로해 주셨다. 부모님께서도 마찬가지로 내게 아쉬운 기색하나 비치지 않으셨다. 부모님과 전주에서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부모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우리 연영이가 제일 아름답더라”
 
꼴찌로 들어 온 내 모습이 제일 아름다웠다던 부모님의 말씀. 이번 소년체전을 치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 대신 난 많은 걸 얻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와도 끝까지 완주할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그 무엇보다 다시 한 번 가슴깊이 느낀 크나큰 부모님의 사랑, 내 주위 분들의 관심, 이게 내가 이번 대회를 치르며 얻은 메달이었다.

진짜 금메달보다 더욱 값지고 귀한.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꼴찌로 목에 걸은 메달과 이 날의 추억, 그리고 “꼴찌가 있어야 일등도 있는 거야. 꼴찌인 연영이가 이 엄마 아빤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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