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알통구보' 20년
한겨울 '알통구보' 20년
함께사는 세상 [114] 청성면 삼남리 서인교 이장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5.29 00:00
  • 호수 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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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생긴 세퍼드 '달오'와 서인교 이장.

마을 이름이 너무 솔직하다. 정확하게 삼거리 중 한 갈래 길이라 해서 ‘삼거리’다. 청성폐도를 따라 묘금리를 거쳐 청산쪽으로 치고 올라가면 이내 나오는 마을이 삼거리다. 사실 보이는 건 동그란 맷돌처럼 생긴 마을 표지석이다. ‘삼거리’ 마을 표지석을 따라 한 참을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100여 마리의 개를 키우는 서인교(50) 이장의 집을 무사히 지나쳐야 한다. 그냥 잡견도 아니고 특수 훈련을 받은 세퍼드와 알래스칸 말라뮤트, 로트 와일러, 골든 리트리버 등 특수 견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엉뚱한 짓 하려고 시골마을 들어섰다가는 개 짖는 소리에 혼비백산 달아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특전사 출신 알통구보 20년 경력의 서인교 이장의 집이 아니던가. (※알통구보-윗옷을 벗고 달린다는 의미의 군대용어)

◆서인교 이장을 만나다 
그의 집은 앞에 말했던 것처럼 마을 앞에 멀찌감치 나와 있어 검문소 아닌 검문소 구실을 한다.  새까맣고 단단하게 생긴 ‘로트와일러’의 눈빛과, ‘골든리트리버’의 우람한 몸짓, ‘알래스칸 말라뮤트’의 강인한 얼굴과, 명견의 대명사 ‘세퍼드’의 자태만 보더라도 오금을 저릴 일이다.

게다가 서인교 이장의 이력을 들었다면 벌써 까무라치고 놀랄 것이다.  서인교 이장은 산전수전 사막전까지 다 겪은 정예요원 이장이다.  73년 9월18일 군입대, 논산훈련소 184기 기행 하사관출신으로 김해공병학교 52차 폭파과정을 수료했고, 공수부대에서 공수교육(100기)을 받았으며, 특수전(42차) 과정도 거쳤다. 

훈련과정을 마치고 바로 덕유산 천리행군에 들어갔고, 군 생활을 하다가 78년 3월30일 1공수여단에서 전역한다. 당시 여단장은 전두환에서 박희도로 바뀌었다. 다행히 그는 80년 광주의 5월을 비껴섰다.  군 제대 후에 79년 7월10일 그는 현대건설에 입사한다. 거기부터가 사막전이다. 

서울서 잠시 일하다가 사우디아라비아 HTI현장에 배정받아 1년 동안 노무관리를 맡는다. 그는 HTI현장에 이어 알코바 현장에서 한국인 6천명과 외국인 2천명이 동원된 대규모 아파트 공사에서 땀 흘리며 일을 했다.

그리고 30개월 만에 귀국했지만, 바로 1년 뒤 이번에는 이라크 팔루자 현장으로 파견된다. ‘팔루자’는 지난 4월 미군이 800여 명의 이라크 주민을 대량 학살된 곳으로 알려져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명분을 잃게 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 사막에서 4년을 넘게 생활을 하다 고향에 돌아온다.

◆사막의 더위, 고향의 추위를 못 이기다
5대째 청성면 삼남리 삼거리에 살아 온 그는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삼거리 토박이다. 묘금초등학교(17회)를 나왔고, 영동 영산중을 졸업하고, 영동 잠업고등학교(현 인터넷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때까지 만해도 고향에서 농사 질 목적으로 잠업고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영동에서 하숙을 하며 학교를 다니던 고3시절, 어머니가 출산 휴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방황을 했다.

“변화가 많이 있었지요. 한참 고민이 많던 시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바로 군대에 자원입대했어요. 그 때 ‘특전사 모병 4기생 하사관 모집’벽보가 눈에 크게 들어왔어요. 장남이었으면 할 일도 많았을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선택이었지요.” 

그는 군생활을 거치고,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아버지 농사를 도와야 했고, 또 고향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사막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그는 산밑 고랭지 마을이었던 고향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 특전사 출신답지 않게 몸살감기에 위장병에 계속 앓았다. 그래서 그는 알통구보를 시작한 것이다. 그다운 해법이었다.

◆한겨울 알통구보 시작, 추위를 이기다
85년 겨울부터 알통구보를 시작했다. 웃통을 다 벗고 무작정 4km 국사봉 줄기를 내달렸다. 그러면서 추위를 이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끙끙 앓기도 했지만, 몸은 이내 적응을 했다. 

고향에 정착하며 시작한 농사는 수박과 옥수수 등 작목을 바꿔가며 여러번 시도를 했지만, 농산물 유통과정의 부당 이득을 보고 좌절을 했단다. 소를 키우며 축산업에도 손을 댔지만, 결과는 참패. 그러면서 그는 93년도에 특수견 사육과 분양을 시작했다. 

세퍼드를 들여왔고, 다른 특수견도 사들였다. 그리고 세퍼드를 알통구보의 파트너로 택해 같이 달렸다. 아침 7시 이전이면 그와 개 10여 마리가 산을 질주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산을 주름잡는 ‘타잔’처럼 때론 반바지 차림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달렸고, 지금도 달린다. 

같이 달리던 개는 한 마리로 줄였고, 알통구보는 겨울에만 하는 것이 조금씩 바뀌었을 뿐. 여러 마리의 개와 달리면 간혹 나물캐던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것 같아 줄였고, 겨울 이외의 계절에는 가벼운 추리닝 차림으로 구보를 한다. 

“여름에는 긴팔을 입고 다니고, 오히려 겨울에는 다 벗고 다녀요. 나름대로 저만의 계절 적응법이랍니다. 예전에는 잔병치레를 많이 앓았는데, 운동을 시작하고서 건강해 졌어요”

◆잘생긴 세퍼드 ‘달오’ 재산목록 1호 
그의 세퍼드 ‘달오’는 지난 23일 한국전견종협회에서 주관한 웅비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미스터 코리아’대회. 개의 외모와 자태 심사부터, 보행심사, 스피드 심사까지 우수하게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달오는 탤런트 노주현씨가 키웠던 4천만원 가까이 되는 세퍼드 ‘리도모베크’의 새끼이다. 주인을 충실히 따르는 훌륭한 개라는 것이 서 이장의 설명.

“진도개는 한번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잖아요. 그런데 세퍼드는 3일만 같이 데리고 다니면 주인이 바뀌어요. 그래서 군견으로 세퍼드를 쓰잖아요. 군인은 바로 제대를 하니까 한번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면 곤란하죠. 세퍼드 이외에 다른 개들도 장·단점을 가지고 있죠. 개를 키우면서 성격이 더 순화되고 착해진 것 같아요.” 

삼거리 15년 장수 이장, ‘장수마을’됐으면 
이장만 벌써 15년째다. 17가구 30명이 조금 못되는 조그만 마을이다. 하지만, 장수마을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다. 개울물 맑고 산에서 내려온 공기, 기가 막힌다. 숲속의 작은 마을에서 사는 마을 주민들은 그래서 오래 산다. 

“장수마을로 지정이 됐으면 하는 욕심이 있죠. 현재 95세 박선월 할머니와 92세 최봉래 할머니가 계시고, 85세 넘은 할머니들도 5∼6명 정도 돼요.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어찌보면 고향을 어렵게 선택했다. 고향에 내려와서 병으로 고생도 많이했고, 농사도 실패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알통구보로 매스컴에 알려져 특전사 출신 친구들 여럿 만났어요. 고향으로 내려 올 당시 시골가서 뭐 할거냐고 서울에 남아있으라고 권하는 친구도 많았었지만, 제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고향은 그에게 몇 차례 시련을 주었지만, 그것은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여전히 건재했고, 어릴 적 그 때처럼 국사봉 줄기를 내달리고 있었다. 이제 그의 곁에는 듬직한 충견과 의지할 수 있는 마을 주민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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