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회관 앞마당의 아이들
관성회관 앞마당의 아이들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1999.07.31 00:00
  • 호수 4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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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춤은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요

태양이 뜨겁게 내리는 오후, 관성회관이 가려주는 손바닥만한 그늘 아래로 다섯 명의 아이들이 모여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서로의 모션을 챙겨주고 어긋나는 박자와 동작에 대해 얘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한껏 진지한 표정이 묻어나다.

"제일 힘든 건 학교에서나 어른들이 우리를 방과 후에 축구를 하거나 글을 쓰는 아이들하고는 다르게 본다는 거죠."

아이들이 가장 힘든 것은 춤 추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아이들은 그들의 춤을 그냥 그대로 10대들이 즐기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29일 대전에서 힙합 페스티발이 있어요. 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연습하고 있는 거에요. 그 대회만 끝나면 공부해야죠. 고 3인데."

옥천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댄스동아리 D-Boys 멤버들은 이번 대회가 끝나면 그렇게 좋아하는 춤이지만 잠시 쉴 생각이라고 말한다.

대학입시를 위해서 수능시험 대비에 전력을 해야하는 것이 그들이 춤을 잠시 멈추고자 하는 이유다.

벽 한쪽 모서리에 찰랑거리는 머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진표가 뛰어가 스포츠 음료 한 병을 받아들고 온다.

"희영이 애인하고, 제 친구예요."

음료수를 받아들고 온 진표는 조금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글쎄요. 춤을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정상에 올라서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취미로 만족할 생각이예요."

기성세대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비이성적이고 감상적인 사고로 무대에 올라선 댄서들의 화려함에만 도취 돼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만큼 신세대들의 생각이 어리지만은 않았다.

▲춤을 춘다고 이름이 적히는 아이, 스케이트보드 탄다고 파출소 끌려가는 아이

관성회관 한 쪽 벽면 차량 출입금지구역으로 들어서는 차로 인해 자리를 몇 번씩 비켜 주며 얘기를 하던 중 경찰 순찰차가 지나간다.

"순찰차나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 추던 춤도 추기 싫어져요."

스케이트 보드 타는 것을 즐기는 희영이는 옥천에 탈 만한 곳이 많지 않아 대전 은행동 문화의 거리를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언젠가 공공장소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탄다고 파출소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는 희영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곳 중에서 공공장소가 아닌 곳은 없잖아요. 정말 이상해요"

희영이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중학생 래호도 한마디 거든다.

"저도 관성회관에서 춤을 추다가 경찰 아저씨한테 이름 적힌 적 있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래호는 이름이 적혔다는 것에 대한 짜증보다는 `오히려 왜 그래야 하는지?' 에 대한 궁금함이 더욱 깊게 배어 있다.

그런 래호에게 해줄 궁색한 변명도 찾기 힘든 지금, 애써 한마디 던져 본다.

"저기 저렇게 버려져 있는 지저분한 담배꽁초 때문이지"

"춤을 추는 아이들은 절대로 담배를 피지 않아요. 숨이 가빠서 도저히 춤을 출 수 없는 걸요."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관성회관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공동체

언제부터인가 그곳에는 거의 매일 열 다섯 명에서 스무 명 가량의 아이들이 모인다.

학기 중에는 수업이 끝나는 오후 3, 4시부터였지만 방학을 하면서 모이는 시간이 빨라졌다.

"입시만을 위해서 아니면 모든 학생들은 똑같은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춤이 최고죠, 제가 선택한 취미예요."

이곳에 모이는 아이들은 대부분 춤을 추기 위해서나 아니면 춤추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인다.

카세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즉석에서 춤 솜씨들을 뽐낸다. 춤을 추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고 지켜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도 웃음과 함께 진지함이 읽힌다.

"야 상목이 많이 늘었는데, 방학 때 춤만 췄냐?"

멋진 기술과 훌륭한 춤이 나오면 아낌없이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 주었고, 서로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는 10대의 가벼움이 아닌 자신의 취미생활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래호가 다른 아이들의 추켜세움에 못이기는 척 나와 땅바닥에 손을 짚고 회전을 하는 고도의 기술을 보인다. 래호는 옥천상고 댄스그룹 FOD에게서 지도를 받는 리틀FOD 멤버다.

FOD의 유신이는 래호의 춤 실력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한다.

등하교길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관성회관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서는 읽힌다.

관심사가 같은 아이들끼리 모여 있는 곳, 그곳에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은 장날 장터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활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까지 시멘트 바닥에 몸을 비벼야 하는 것일까?

"집에 들어가 보면 간혹 온몸에 멍이 들어 있거나 벗겨져 피가 흐르는 곳도 있죠.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다른 마땅한 곳이 없잖아요."

아이들은 희망한다. 눈치안보고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을. 거울이 붙어있고,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는 곳이 아니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냥 시멘트 바닥에 장판이라도 깔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이들의 얘기다.

갈 곳이 없어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할 일이 많아도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만큼이나 춤을 출 수 있는 공간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잘 못된 생각이라고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는 문제다.

"우리가 나이 40이 돼서 지금처럼 춤을 출 수야 있겠습니까? 그냥 재미있었던 추억이겠지요."

그들이 좀더 안전하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이제는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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