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고향사랑, 마음은 늘 그 곳에"
“말없는 고향사랑, 마음은 늘 그 곳에"
[내고향 옥천] 안내면 현리 출신 대한전문건설협회 서울시지회장 박덕흠 원하건설 대표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4.05.15 00:00
  • 호수 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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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덕흠씨

인연은 꼬리를 문다. 그것은 또 하나의 망이다. 그 촘촘하게 짜여진 거미줄 같은 망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향이 있다.  그렇다. 모든 인연은 고향에서부터 시작되고, 거기서부터 가지를 친다. 고향은 인연의 근원이다.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자신의 기억력과 친구들의 옛 이야기를 덧붙이면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박덕흠씨의 그리움도 결국 고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착실하게 키워 온 한 전문건설회사의 대표이자 서울시 건설협회 회장까지 맡고 있는 그가 딱딱한 직책에 맞지 않게 구수한 옛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도 ‘고향’이란 말 때문이었다. ‘고향’은 사람을 일순간 무장 해제시키고, 기분 좋게 하는 마법의 단어였던 것이다. 그가 벌써 빙그르르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옛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련했던 중학교 시절의 추억들

안내초(42회)와 옥천중(18회) 졸업생인 그는 개구쟁이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친구들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이인석(문화원장)이는 월외리 깡촌에서 살아서 맨날 학교 오려면 20리길을 걸어와야 했죠. 보따리 딸랑딸랑 거리며 맨날 뛰어다녔으니까 그렇게 달리기를 잘했지요. 인석이는 마라톤 선수였어요. 염종만(군 기획감사실)이는 국민학교 때는 키가 많이 컸는데, 그 때 이후로 많이 자라지 못한 것 같아요. 중학교 국어 선생님 별명이 인절미였는데, 생각이 나네요. 생물을 가르쳤던 이내훈 선생님도 생각이 나고요. 지금도 친구들하고는 자주 연락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회하다가 그는 기술하사관으로 군에 입대, 77년 중사로 제대한다. 제대 후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해 83년도 서울시 공무원에 합격, 1년 동안 지내다가 그만두고,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에 편입학한다. 원하건설은 학교를 다니면서 같이 시작했다.

이제 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원하건설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기까지는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시련을 착실하게 안정된 경영으로 이끌어 왔다.

◆절대 빚이 없는 회사가 경영원칙

그는 은행에 빚이 없다. 절대 빚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경영철칙이자 삶의 한 원칙이기도 하다. 술집에 가서도 한 번도 외상술을 마셔본 적이 없고, 어음을 주고 받는 공사는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기가 입찰을 따내야 할 중요한 건이 있었는데, 공사비용이 모자랐다.

그런데 마침 절친한 친구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소장으로 있으면서 3천만원을 벌어와 그 친구에게 돈을 빌려볼 까 두 번이나 갔었지만,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그는 결국 공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그 원칙은 더 확실해졌다. 무리한 투자보다 안정적인 경영으로 내실을 기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도 돈은 벌면 벌수록 욕심이 나는 거 아닙니까? 한 번도 유혹이 없으셨는지요?”

“지금도 웬만큼 벌었는데, 돈 많이 벌어서 뭐합니까? 어디다 쌓아두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만큼 벌어도 남들 하는 만큼 다 하고 삽니다.”

한창 잘 나가는 기업인에게서 들은 대답치고는 의외였다. 그는 벌써 부의 과잉에 대해 경계하고, 적당히 제어할 줄 알았다.

“100만원을 벌면 50만원은 저축하고 50만원 가지고 투자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상식 아니겠습니까?”

그가 전문건설에만 주력하고 주택건설에 발을 담그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내 자식들에게도 똑 같이 가르칩니다. 욕심내지 말고 내 몫만큼 착실하게 살으라고.”

◆이인석 문화원장이 말하는 박덕흠씨

◑ 약 력◐
◇서울산업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 토목공학과 졸업(공학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서울산업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 제7대 회장

“개구쟁이였고 의협심이 강했어요. 또, 서울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저를 통해 옥천의 사회복지시설에 많은 도움을 줬고요. 고향과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 친구에요. 덕흠이의 큰 형인 박동권씨도 안내초에 오르간도 기증하고 기타 학용품도 많이 지원해 주셨죠.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큰 구실을 할거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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