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평 포도 하우스 한 순간에 ‘폭삭’
1천여평 포도 하우스 한 순간에 ‘폭삭’
눈트기 시작한 포도나무 수확 기대 어려워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4.03.13 00:00
  • 호수 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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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학령2리에 있는 1천여평 면적의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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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노랫소리가 가득했던 3월에 내린 눈은 한 · 칠레 FTA 국회통과 소식으로 불안에 떨던 농민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무너뜨렸다. 동이면에서 30년째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박하정(73. 학령1리)씨. 

이웃한 학령2리에 잇는 1천여평 면적의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으면서 박씨의 가슴도 함께 내려앉았다.

많은 눈이 내린 5일, 일찌감치 포도하우스에 찾아가 보일러 온도를 높였다. 쌓이는 눈이 조금이라도 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연동하우스여서 눈을 긁어내리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온도를 높이는 것이 박씨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박하정씨

그렇게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옆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윷놀이를 하면서 지켜보다가 괜찮을 것 같아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오후 4시쯤에 작목반 관계자에게 전화가 왔다. 하우스가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내가 평생 동안 3월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처음 봤어. 지금도 하우스에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네...“

6일 무너진 하우스를 찾아가긴 했지만 박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동이면에서는 인력지원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나마도 눈이 어지간히 녹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달 중순쯤에 무너진 하우스를 철거할 수 있을 걸로 박씨는 내다봤다.

박씨는 “이미 눈이 트기 시작한 포도나무에서 올해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라며 “이 참에 쓰러진 하우스를 모두 걷어내고 농사를 포기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데다 올해는 포도수확까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정부에서 ‘폐업보상금을 준다’면 당장이라도 농사를 그만 지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지난겨울 내내 재작년보다 2배는 뛰어오른 면세유를 태워가면서 정성스럽게 키운 포도나무에서 수확을 바랄 수 없게 생겼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기름을 한 100드럼 정도 태운 것 같으니까, 기름값으로 800만원은 족히 나가야 돼. 헛수고 한 거지 뭐.”

안타까운 마음에 "아까워서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박씨는 오히려 “그런 생각하면 농사 못 짓는다”라며 담담하게 웃었다. 30년 동안 포도농사를 지어오면서 늘 그랬던 것처럼 무심한 하늘의 재앙을 박씨는 또 한 번 가슴으로 삭혀내고 있었다.

[2004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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