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열 네돌, 발행인의 고백
창간 열 네돌, 발행인의 고백
창간14주년 기념일에
  • 오한흥 ohhh@okinews.com
  • 승인 2003.09.26 00:00
  • 호수 69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듣던 무용담(?) 비스름한 얘기로 말문을 여는 게 좋겠다.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신문은 무슨….' 덕담대신 비아냥섞인 우려가 주류를 이루던 분위기로 기억된다. 지금 산림조합 자리 한 켠에 가마니 창고로 방치되다시피한 곳을 임대해 보증금없이 사글세 10만원으로 출발했다. 

난로대신 준비한 곤로에서 내품는 시커먼 그을음이 10여평 남짓한 공간을 매캐하게 만드는 건 금새였다. 환기를 위해 따로 문을 열지않아도 좋을 만큼의 틈새를 가진 부실한 문짝들하며 이후 나아진 살림살이 때문이 아니라 쫒겨다니다시피 했던 몇 번의 이사 등.

살았던 집을 연결하는 일도 기억을 더듬어야할 정도다. 쉽게 눈에 들어오는 외형적인 변화는 개인사가 그렇듯이 이사를 기점으로 하는 경우는 본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열악하기만 했던 이 세월을 함께 해 온 직원들이 있었고, 더 중요하고 고마운 건 이런 와중에서도 늘 본보를 사랑해 주신 주민여러분이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모아진 힘이 오늘 이 정도나마 본보를 지탱해 주는 힘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입에 발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나 창간사니 기념사니 하는 게 하다보면 늘 이런 투의 말로 채워지기 십상이다. 더 길어지기 전에 앞 뒤 자르고 `본보 임직원 모두는 마음을 모아 최상의 신문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하련다.

그렇다고 여기서 맺을 순 없고 하나 더, 모처럼 지면을 허락한 김에 독자여러분께 용서 구할 일을 고백하고자 한다. 다름아닌 창간당시부터 본보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창간 의지에 대해서다. 

그동안 겉으로 내세운 `지역사랑'이니 `정론직필'이니 하는 교과서 수준의 원론적인 얘기에서 한참 벗어남을 미리 말씀드리며 이런 저런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바람에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드린다. 결론은 나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다. 부수적으로 신문이 나아지고, 그래서 지역에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바가 없겠고.

필자의 솔직한 창간 의지는 `기자들의 특권 또는 위세에서 비롯된 일종의 부러움'에서 출발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된 필자로서는 고향에 남아 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시절 기자들의 위세는 한 마디로 대단했다. 기자라면 통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로였던 게 사실이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쨌거나 기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는 대단했다. 이러한 부러움이 필자로 하여금 본보 창간의 열정으로 포장됐음을 늦게나마 솔직히 밝히며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고백은 지난 시절 신문의 이름으로, 기자의 위세로 저질러진 과오에 대한 반성이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모두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신문, 또는 신문종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창간 열 네돌을 맞는 지금, 고민끝에 이 고백을 드린다.

물론 이번 이런 고백이 나 자신이나 본보의 100% 투명을 전제하는 건 아니다. 수위를 높여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많은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신문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정도로 읽어주셨으면 고맙겠다.  우리의 노력보다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늘 큰 주민여러분의 사랑을 느끼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