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세요?] 화투장에서 건져낸 여유
[어떻게 지내세요?] 화투장에서 건져낸 여유
묘금리 마을회관 할배, 할매들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3.09.20 00:00
  • 호수 6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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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투친 사람은 앞줄 왼쪽의 김홍문(73, 노인회장), 김월봉(86)씨와 오른쪽부터 안정애(88), 서석인(69), 김봉임(77)씨 등 다섯분과 함께 마을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름철 둥구나무에 매달려 귀청을 따갑게 했던 `매미'의 울음소리는 초가을 농심을 후벼팠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주문을 외웠던 추석 명절 끝자락에 불어닥쳤던 태풍은 떠나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의 평화와 고요는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한 켠에서는 온 힘을 다해 태풍으로 넘어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고, 또 한 켠에서는 여느 날과 같이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묘금리 마을회관, 그 곳의 여유로움은 태풍의 눈과 같아 잠깐 쉴 틈을 주었다. 

"우리 마을이야 고속도로가 도륙내고, 뒷산에 멧돼지가 와서 농작물 싹 해치우고 이래저래 피해가 많았지. 그래도 근심걱정이 밥 먹여주나. 천천히 쉬엄쉬엄 일하는 거지."

조그만 모포에 널려진 화투자락, 십원짜리라며 웃는 얼굴로 화투장을 내질렀던 할머니들의 손놀림은 경쾌했다.

"왜? 화투한다고 잡아갈라고. 잡아가. 이 늙은 할미 밥먹여주고 재워주면 좋지. 어디 써먹을 데 있다고 잡아가겄어."
"풍났어. 봐봐. 내가 180원 따고 저 영감이 조금 잃었어."

아침나절 집안 청소하고 논, 밭에 가서 일보다가 점심 먹고 슬슬 마을회관에 나온단다. 

"너무 많이 하면 안 좋으니까 돌아가면서 천천히 시간 놀음하는 거지. 치매예방에도 좋다매."
"올해 비도 많이 오고 태풍도 불어 어떡해요?"
"비도 비지만, 이 놈의 멧돼지는 할배, 손자, 며느리까지 3대가 와서 휘젓고 다닌다니까. 좀 잡으라고 혀. 내년에는 좀 좋아지겠지."

하늘이 무심하게 내린 재해에 휘둘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과 의지가 생겨나기를 바랐다. 묘금리 마을회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화투놀이는 힘겨운 일상에서 여유로움(?)을 건져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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