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영동간 4호 국도변에서 걷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옥천읍 소정리 구간에 차를 세웠다. 마침 이 구간은 옥천읍에서 화단을 조성해 가꾸는 곳이다.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자라면 한 번쯤 이 구간 화단의 노란 꽃, 빨간 꽃과 솜을 틀 수 있는 목화꽃에, 철도변으로 핀 무궁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 더구나 소정리 쪽에는 보라색, 흰색 도라지까지 있어 꽃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다.
화단 턱에 앉아서 쉬엄쉬엄 오시는 모습이 한 노인이다. 눈에 들어온 지 한참을 걸려서야 차가 서 있는 곳에 도착했고 이윽고 말을 붙일 수 있었다.
"나? 몇 살을 먹었는지 몰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머니를 뒤진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지갑에서 꺼낸 주민등록증이다.
1904년생. 우리 나이로 따지면 100세다. 주소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김인수 옹.
옥천읍 소정리에 사신단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큰 소리로 주고받은 얘기인 즉, 소정리에 사는 넷째 따님의 집에 와있다.
"매일 한 번씩 하체 운동도 할 겸 철도길 건너서 이렇게(소정리에서 철도 건널목 건너 이원 쪽으로 국도변을 걸어 삼청리 건널목을 건너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돌아가. 아직은 걸을 만해."
딸 이름도, 사위 이름도 기억을 못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위 자랑이다.
"우리 사우? 참 효자여. 술 안 떨어지게 하고, 먹을 것 안 떨어지게 해주고!"
비교적 건강했지만 내딛는 걸음이 워낙 느리다 보니 철도 건널목을 건너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르신, 철도 건널목 건너실 때 조심하세요"라며 당부하는 소리에 "걱정 말어"라고 대꾸하는 김 옹의 모습에서 우리시대 아버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