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약속을 하찮게 여기는 기관
[현장에서] 약속을 하찮게 여기는 기관
  • 점필정 기자 pjjeom@okinews.com
  • 승인 2003.08.07 00:00
  • 호수 6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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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고, 상대방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옥천읍 서정리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을 살펴보면, 법을 수호해야 할 정부 기관이 이 약속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6년과 1997년 당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주민설명회를 갖고 마을 뒷산 쪽으로 나는 새 도로(4번 국도에서 신설 37번 국도로 연결되는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나섰고, 주민들은 마을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을 바로 뒤편에 진입로를 내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담당자는 흔쾌히 이를 약속했고, 주민들은 도로 공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편리하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를 꾹 참았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 주민들은 이 진입로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계획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이 폭발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5일 주민 설명회에 나선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담당자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담당자와 설계자들이 모두 그만 두어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당시 주민설명회 자료를 바탕으로 설계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민원이 있어 진입로를 조금 `당겨주겠다’라는 `베푸는 마음(?)’으로 설명회에 나선 것이다.

또 기본설계가 나왔을 때 주민설명회를 갖고 진입로 설치에 대해 설명했다고 하지만, 주민 그 누구도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담당자들은 왜 그때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 이러느냐고 짜증섞인 말을 내뱉는다.

문제의 시작은 `약속’이었다. 문서나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분명 대부분의 마을사람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약속’. 당시 약속을 했던 사람이 관에서 나왔기에 주민들은 당연히 이 약속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당시 담당자가 관련 법규나 기술을 검토하지 않은 채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양 약속을 했다면 이것은 분명 주민을 속이고 우롱한 것이다.

자기 땅 내주면서 도로 공사를 승낙한 것인데 애초 약속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더라면 도로 선을 변경해서라도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겠느냐는 한 주민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주민들은 물리적으로 진입로가 멀어지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사 시행청의 거짓말에 분노하고 있다. 어떻게 국가기관이 주민들과의 약속을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저버리고 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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