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나는 이곳을 `희망의 나라'라고 부른다
[교단일기] 나는 이곳을 `희망의 나라'라고 부른다
송주희 〈이원초 지탄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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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7.19 00:00
  • 호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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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초 지탄분교 송주희 교사

새학기가 막 시작된 3월 어느 날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 6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반 아이들이 작년보다도 2명이 늘어 41명이나 된다고 걱정을 했다.
 
친구는 나에게 반 아이들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11명의 꼬마들이 줄줄이 나를 따른단다."
 
나는 올해 1, 2학년 복식학급을 맡았다. 1학년 4명과 2학년 7명! 2개 학년 학생을 합해도 고작 11명뿐이니, 친구와 나는 학생 수를 비교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우리 학교의 전교생은 도시학교 한 학급 인원밖에 되지 않는 47명이다. 
한 학년 학생만으로 운동경기를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피구나 축구를 하는 날이면 전교생이 다 모여서 편을 나누고 신나게 함께 어울린다. 다른 학교는 1년에 한 번 하는 체육대회를 우리는 한 달에도 몇 번씩 하는 셈이다.
 
작년에 이어 2년째 분교근무를 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새롭고 싱그러움을 느낀다. 어딘가 부족한 듯 그러나 그 부족함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받아들일줄 아는 이 아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우리 아이들은 손님을 참 좋아한다. 동급생 4명, 7명이 6년을 같이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학교로 찾아오는 낯선 얼굴들을 수줍음과 신기함으로 반기는 아이들에게 아직 때묻지 않는 순수함이 남아 있음이다.
 
전에는 아이들로 꽉 차서 답답증을 일으켰던 교실은 어느새 순수한 11명 꼬마들의 꿈과 도전으로 가득한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곳을 `희망의 나라'라고 부른다.
 
어느날인가 한 녀석이 일기장에 군것질을 했다는 내용을 썼다. 확인을 하면서 덧붙임으로 `선생님은 새우깡을 참 좋아한단다'고 썼더니 다음날 아침 내 책상위로 새우깡 한 봉지가 놓여져 있지 않겠는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그 다음날에 또 다른 간식거리가 놓여져 있다.  다른 아이들이 가져다 놓은 것들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가져다 주는 간식거리는 자두 몇 알, 껌 한 개, 사탕 몇 개, 집에서 농사 짓는 과일이 전부이다.
 
어느 아이는 할머니 사탕봉지에서 슬쩍 가져온듯한 박하사탕 한 개와 편지를 적어놓기도 한다. 이게 어디 아무데서나 받아볼 수 있는 선물이겠는가!  며칠 전 장대비가 내리던 날 퇴근을 하는데 우리반 녀석들이 흠뻑 비를 맞은 채 인사를 한다. 우산은 분명 손에 들렸는데 머리며 옷이 온통 젖었다.
 
비를 장난감 삼아 신나게 뛰어논 모양이다. 도시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곳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1년여 넘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나는 번잡함을 떠나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자유로움, 포근함을 얻고 있다. 또한 작은 것의 미학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점점 커져만 가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과 나는 혹여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나는 믿는다. 세상을 크기의 비교만으로 살 수 없음을,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과 자연은 늘 희망이라는 이름의 꼬리표를 달고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리라는 것을...       
송주희  /sjh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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