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 백원경
골퍼 백원경
함께사는 세상 [106]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6.13 00:00
  • 호수 6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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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탁~ 그냥 치는대로 공이 잘 맞는 느낌이 너무 좋아 골프가 좋다는 원경이.

원경이(백원경·17)는 골퍼입니다. 작년 6월25일부터 골프를 시작했으니 이제 조금 있으면 딱 1년이 됩니다. 지금 그 열기가 많이 식기는 했지만 원경이가 골프를 시작하면서 주위에서는 큰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유명한 메이저 대회에서 입상을 한 것도 아니고, 골프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관심이 쏟아진다니 분명 그 이유가 있겠지요. 원경이는 영실애육원골프단 소속입니다. 영실애육원에서 탁구부를 만들었다면 관심의 정도가 지금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 관심 속에는 `골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관심을 끌던 원경이가 지난 5일 청주 그랜드CC에서 열린 충청북도협회장배 골프대회에서 여중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입상권에 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우승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관계자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고 합니다. 원경이는 이번대회에서 86타를 쳤다는군요. 골프를 시작한지 1년밖에 안된 여자 중학생이 기록한 것치고는 무척 좋은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인 6일 원경이를 만나러 공설운동장 옆 골프연습장엘 가 보았습니다. 휴일이었언 6일 골프연습장에 나와서 훈련을 하는 것이 억울해서인지 원경이는 한쪽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골프단 친구들이 연습시간을 지키지 않아 표종민(32) 코치에게 한 소리를 들었는가 봅니다.
 
표 코치는 늦게, 어렵게 시작한 만큼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아직도 상황을 잘 모르는 선수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농담도 하고, 다른 친구들과 얘기도 하며 분위기를 만든 후 본격적으로 원경이와 얘기를 나눈 시간은 한 시간 남짓입니다. 하지만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 속에 원경이는 `자신과 골프'에 관해 충분히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골프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중간에 꿈이 바뀌었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그런데 이 번에 우승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상대에서 상을 받으니까 기분 째지던데요."
 
잠이 많은 원경이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7km를 뛰어야 하는 것이 제일 괴롭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저녁에 집에서는 푸쉬업이나 어프로치 연습도 해야 합니다.
 
거기다 온순(?)하지 못한 성격으로 `성질'을 부리다 혼나기도 일쑤였습니다. 우승을 한 대회가 있던 아침에도 7km가 뛰기 싫어 성질을 부리다가 표 코치에게 된통 혼났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는 훌륭한 골프선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물릴 만큼 원경이에게 제일 힘든 훈련입니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막상 우승을 하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처음처럼 소렌스탐이나 박세리, 김미현 같은 훌륭한 골프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보고 있는 참입니다. 이번 대회전까지가 원경이가 흔들린 나름대로의 `슬럼프'였습니다.
 
옆에서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면박을 주던 표 코치도 슬그머니 제자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이 눈빛이 살아있어요. 기본적인 체력이나 체격조건이 되는 데다가 중요한 것은 머리가 따라주거든요. 주변에서도 가능성이 높은 아이로 보고 있지요. 저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능한데..." 여운을 슬쩍 남겨주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이겠지요. 그 상황에서 원경이는 자신의 단점도 정확히 짚어 냅니다.
 
방향과 힘 조절을 정확하게 해야 하는 숏 게임에 약한 것과 산만한 성격 그대로 골프를 칠 때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원경이는 `열심히 집중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골프의 재미요? 그냥 치는대로 공이 탁탁 잘 맞을 때죠. 무슨 느낌이 드냐구요? 잘 맞은 느낌이요. 기분좋은 느낌이요."
 
느낌을 꼬치꼬치 캐묻는 제 자신이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원경이를 만나기 전에 클럽을 쥐고 스윙이라도 한 번 해보는 건데'라는 생각이 절로듭니다. 하지만 시커먼 원경이 얼굴에 드러나는 하얀 치아가 그 `기분 좋은 느낌'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설명해 줍니다. 광고에도 쓰였던 신발 위 새카맣던 박세리의 다리만큼이나 원경이의 살결도 햇살에 검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좋지는 않아요. 그래도 원래 피부가 새카만 편이라서요." 뭐든, 긍정적으로 덮고 넘어가는 것이 원경이가 말하는 자신의 `털털한' 성격인가 봅니다.  "세상의 관심이 좋기도 하지만 조금 웃기기도 해요. 지난번에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것을 내가 보니까 웃기더라구요."
 
원경이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골프단에 쏟아지는 관심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는 않는 눈치입니다. 오히려 간혹 대회에 출전해 집안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출전한 선수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꼴은 것 쓰는데 걔네들은 좋은 거 쓰잖아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실력이 거기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좋아보이니까 부럽기는 하죠." 현재 원경이를 비롯한 골프단 친구들은 장비부터 훈련 장소까지 거의 100% 후원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넉넉한 조건 속에서 운동을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원경이는 특별히 부족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골프하니까 좋은 점도 많아요. 태국이나 여기저기로 전지훈련도 다닐 수 있고 코스를 돌 때는 정말 재밌어요."
 
만일, 후원이 끊겨 더 이상 없을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원경이는 `그 때 가봐야 하겠지만 후원이 끊기면 혼자서라도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후 지금, 확실히 원경이는 그 어느 때보다 골프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건이 어려워 출전하려던 대회를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경이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키 158cm, 몸무게 47∼50kg, 털털한 남자 같은 성격, 성질 잘 부리는' 원경이는 아직까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치밀한 계획'보다는 `순간의 재미와 어려움'에 수 십 번도 더 꿈이 바뀔 나이입니다.
 
하지만 지금 원경이는 아침마다 잠과의 전쟁을 벌이며 프로골퍼의 길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습니다.  원경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자양분이 될 관심과 사랑이 끊이지 않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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